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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

금천예술공장과 장마




다시 장마가 시작입니다. 기상 관측이래 가장 더웠다는 6월을 보낸 터라 아직 시작하지 얼마 되지 않은 장마가 그런대로 낭만적이기 까지 합니다.

 

7월이 되고, 오늘 서울 창작 공간 금천 예술공장에서 스튜디오를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예정된 수순 이였고 충분하게 이 상황에 대하여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스럽거나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올 것이 드디어 왔구나 하는 정도의 가벼운 한숨이 나왔다고 할까요? 국공립 창작공간이 작가들에게 요구하는 입주기일의 의무 사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예술가들이 비단 무늬만커뮤니티뿐만은 아닙니다. 많지는 않지만 이런 문제 제기와 함께한 작가들은 결국 제도적 벽을 넘지 못하고 창작공간에서 퇴출(?)되는 불편한 꼴이 되곤 했었습니다.

 

국공립 창작공간들의 시스템에 대한 여러 문제점들 중 이 입주기간 의무 사용 양에 대한 부분은 많은 입주작가들의 예술가적 자존감을 흔드는 사안입니다. 가장 창의적이고 자율적이어야 할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방식에 대입되는 이 제도적 관성의 잣대들이 꼭 맞는 잣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무늬만커뮤니티는 금천예술공장의 입주와 동시에 많은 작업들과 프로젝트를 수행하였습니다. 입주와 동시에 전국 국공립 창작공간 네트워크 전시를 기획하여 개최하였고 장장 8개월 동안 안산의 장애우들과 함께 총체적난 극을 완성했으며 혁신고등학교 학생들과 6개월 동안 아방과후르드라는 차이교육을 진행했습니다. 부천에서는 또한 6개월이 넘도록 도시를 있는 그대로의 생태적 관점으로 대면해보는 도시와 캠핑프로젝트를 안양의 박달동에서는 무늬만커뮤니티’1.5버전의 마을어플리케이션 작업을 박달동의 어린이들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또 수원 지동에서는 공공미술의 관행적 패턴성에 문제를 제기해보는 지우는 동네 미술 프로젝트를 함께 하였고 2월 한달 동안은 무늬만커뮤니티 팀원 모두 네팔에서 자연을 걸으며 동시대 아시아가 고민해야할 로컬과 글로벌에 대한 질문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사이 사이 수 없이 만나게 되는 사람과 지역과의 관계와의 상호 작용이 결국 무늬만커뮤니티의 금천시절과 함께 하였습니다. 작업의 성과를 작업 양으로 환산하는 일은 무척 미련한 방법이지만 금천예술공장의 입주기간동안 무늬만커뮤니티가 진행하고 수행해온 작업과 프로젝트들은 물리적으로도 상대적으로도 무엇보다도 예술가 스스로에게 부지런함과 성실함 진정성을 요구한 프로젝트들이었습니다. 대부분 다양한 작업 현장에서 현장성에 맞는 작업을 수행할 수 밖에 없는 무늬만의 작가들은 현장 외의 시간을 금천에서 회의도 하고 연구,리서치도 하면서 현장을 공유할 수 있는 다양한 후속작업을 함께하였습니다. 평균적으로 주 5일 정도의 시간을 현장과 금천을 오가며 그야말로 고되지만 즐거운 작업의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늬만커뮤니티는 서울시 창작공간의 입주작가 의무사항인 출석체크에 응하지 않은 이유로 입주기일을 두달 앞둔 오늘 금천예술공장에서 퇴소조취라는 통보를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일련의 이런 통보는 무늬만커뮤니티가 자처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처한 일이 국공립 창작공간에 불만을 갖은 예술가의 해프닝으로 매듭지어지는 것을 원치는 않습니다.

 

동시대 예술 환경에서 이제 예술가의 작업과 그 태도를 매개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고 다원화 되어 갑니다. 부연하지 않아도 전시장안에서 작가의 작품을 발표하는 방식 외에도 작가들이 세상을 만나는 통로와 접촉면들이 새롭게 생겨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매개 방식을 독립적이고 의미있게 고민하는 것이 동시대 작가의 의무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창작공간에서 작가들을 선별하여 입주시키고 작가들이 스튜디오를 활용하는 방식이 과연 동시대 예술 창작 환경의 기대감과 패러다임을 충족시킨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지금처럼의 스튜디오 사용일수 제한 같은 규칙은 어쩌면 동시대 예술 창작 환경을 너무 스튜디오 형 작가(?)만을 지원하는 편중된 지원 방식 일 수도 있습니다. 동시대 예술계를 너무 모르거나 우습게 보는 지원정책의 안일함일 수도 있습니다.

 

더불어 지역협력 프로젝트라는 명목으로 많은 예술가들에게 자신의 예술적 철학과 관심과는 무관한 작업영역을 은연중에 강요하는 이른바 갑 행위들이 창작공간을 중심으로 자행되는 것 역시 예술가들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불편한 진실입니다. 대부분 1년이라는 입주기간동안 지역을 읽고 느끼며 접촉하고 갈등하고 후회하고 다시 다가서다가 끝나버릴수도 있는 지역은 예술가들에게 그리 호락호락한 곳이 아닙니다. 마치 지원정책과 창작공간의 성과를 위해 암묵적으로 등 떠미는 지역협력 프로젝트가 있다면 그것은 예술가들이 그토록 치를 떨며 싫어하는 공무원들의 전시행정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지난 주 금요일 서울문화재단의 10년을 회고하고 앞으로의 10년을 대비해보자는 취지의 정책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했었습니다. 발언시간이 짧은 터라 많은 이야기를 놓치고 예술이 도구화되는 지금 대한민국의 예술 관련 지원 정책에 대한 안타까움만을 겨우 이야기 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 뜻을 공감해 주신 분들도 많았지만 수 많은 재단의 지원 사업 영역에서 이 부분을 현명하고 지혜롭게 풀어갈 해법이나 관심의 정도를 읽을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제 경험상 이런 간담회나 토론회에서 예술가의 발언이 정책에 반영되었던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점점 이런 간담회나 토론회의 요식적 행위에 신뢰감을 잃어가면서 불신하게 되면서 위축되는 예술가의 무력감들에 대한 무게가 꽤 무거워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예술가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잃지 않고 그 고민의 과정과 의미를 독립적인 가치로 만들 줄 알아야 하겠지요.

 

이제 수 일 내로 무늬만커뮤니티는 금천을 떠납니다. 할 이야기도 많고 앞으로 할 작업도 많습니다만 결국 일련의 이런 과정은 모두 무늬만커뮤니티가 해야할 일이라는 판단에서 수행된 일입니다. 시국이 너무 어처구니 상황으로 정신없는 요즈음 무언가 대의적인 관심과 그 과정에 연대하고 참여하는 작가가 되지는 못할 만정 작업실 타령처럼 비추어질까 민망하기도 합니다. 곧 정신 챙겨 다시 씩씩하게 무늬만의 자리로 돌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