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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2013-'총체적난 극'

총체적난 극- 네번의 만남

2012년 10월 16일
<총체적난 극> - 네번째 만남-김보용




이 날 만남의 첫 분위기는 지난 주 보다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에서 시작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정도와 제스쳐에 있어서
일상적이고 긴장되지 않은 몸짓들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몇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자리에 적응하고 있는 상태로
보였다. 한 달이 넘게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어느 정도 워밍업이 되었으며 전체의 관계망들이 유연하게 조직되었다는 느낌이었고
곧 만남의 성격을 조금 더 인텐스하게 끌고가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날 장석원씨는 클라리넷 연주를 하기 위해 악기를 준비해왔다. 연주를 위해 악기를 연결하고 세팅하는 과정까지 석원씨의 동작은
아주 느리고 세심하였다. 악기 세팅이 끝나고 난 뒤 연주에 돌입하는 과정 상에서도 딜레이는 계속되었다. 악기를 쳐다보며
세심하게 만지거나 느리게 입에 가져갔다 떼거나, 숨을 고르고 내쉬는 준비동작이 꽤나 길게 이어졌다. 석원씨가 연주한 곡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었다. 이 곡명을 이야기 하기 전 까지는 원곡을 알 수 없는 노래였다. 연주 실력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변주와 비슷한 형태로 음의 길이와 템포, 호흡의 위치가 달랐기 때문이다.


김월식 작가의 경우 석원씨의 연주 자체보다 연주로 들어가기 까지의 긴 과정에 주목하였고 필자도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연주 전
딜레이 되는 상황에서 받은 개인적인 인상은 언어가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이루어지는 의미의 되새김질과 비슷한
느낌이었다.딜레이가 되는 동안의 정적은 존케이지의 4분 33초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곡이라는 형태를 끄집어내기 위해
더듬는 정적의 시간은 무언가를 드러내기 위해 시도하는 제스쳐들이 담겨있기에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이 날 개인의 장기를
보여주는 시간 이외에 그룹을 이루어 플레이하는 시간에서는 석원씨의 참여도가 저조하였고 의자에 앉아 사람들을 그저 바라보았다.
조금 이상한 것은 가만히 앉아 그저 바라볼 뿐이었던 석원씨에게서 악기 연주를 하기 위한 딜레이 과정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지난 주, 단체로 플레이 하기 보다 주변에 있는 사물이나 풍경 사이로 주환씨 특유의 몸을 앞 뒤로 흔드는 리드미컬한 동작과

함께 걸어다니기를 잘 했던 손주환씨는 이 날, 단체 플레이의 참여도와 의사소통에 대한 반응이 높았다. 3주차 만남 까지
커뮤니케이션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인상을 불러 일으켰던 것 과는 달리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하게
보여주었다.주환씨는 현철의 '장녹수'를 아주 가느다란 음성으로 불렀고,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이렇게 오래 들려준 적은
처음이었다. 이 날 손주환씨의 나이는 스물 네살 이었으나 이내 곧 옆사람에게 자신의 나이를 물어보았다.

유승동씨와 강태윤씨는 자리가 끝날 때 까지 줄곧 옆에 앉아 있으면서 손을 꼭 붙잡는 모습을 종종 보여주었는데 매우 절친한
사이로 느껴졌다. 2인 1조를 구성하여 플레이 하는 상황에서도 항상 같은 짝을 이루어 참여하였다. 태윤씨는 신체에 불편함이
있지만 몸을 움직이고 드러내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으며 누구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고 참여도 또한 가장 활발한 사람이다. 반면
승동씨 개인은 조용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태윤씨와 함께 있을 때엔 활기가 부쩍 늘어나는 것으로 보였다. 이처럼
둘의 성격은 대비되어 보이지만 해와 달 처럼 긴밀한 관계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듯 보였다.

재인씨는 지난 주와 마찬가지로 mp3 플레이어를 귀에 꼽고 춤을 추었다. 한 곡이 끝나면서 취했던 피니쉬 동작은 플레이어에서
또 다른 곡이 재생되자 다시 춤으로 이어졌다. 평소 호감을 갖고 있는 여러 사람들에게 다가가 춤을 추며 어필하기도 하였는데
병호씨에게 가장 적극적인 어필을 하였다. 강남 스타일에 맞추어 말춤을 추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의 동작은 춤을 많이 추면서 몸에
베어있는 동작들이 반복되면서 표현되었다. 상체를 많이 쓰는 동작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두 곡을 이어서 춘 뒤 허리가
아프다고 하였다. 재인씨는 석원씨 만큼 조용하고 단체 플레이에서 소극적인 참여를 보이는 사람이지만 음악과 춤에 있어서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지고있다.

이 외에 고유림씨는 하모니카 연주를 네곡 정도 하였다. 유림씨의 성격처럼 아주 조용하고 차분한 연주였으며 그 외에 별다른

지점은 발견하지 못하였다. 정란씨는 지난 주와 마찬가지로 다른 친구들을 비교적 잘 챙기며, 활발하게 참여하였다.


이 날, 조강이 작가의 몸을 이용한 놀이방식은 2인 1조로 균형을 맞추는 동작이 주를 이루었다. 두 파트너가 서로의 신체
무게를 이동해 가면서 균형감각을 키우는 동작이었다. 무게를 주고받으며 밸런스를 유지하는 동작은 놀이기구와 비슷한 느낌으로
동작에서 율동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함께 플레이하였다. 참가자들의 몸에 대한 균형감각을 키우고, 긴장감을 완화하며 친밀감을
조성하는 것에 중점을 둔 시간으로 보였다. 신체활동이 많지 않은 참가자들의 특성을 고려해서 워밍업에 적합한 동작이었다.

이 날은 전체적으로 참가자들의 장기를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자신이 잘 하는 것'을 남에게 보여주는 시간은 괜찮은 것이지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자리'와 같은 분위기가 형성이 되는 것은 아닌지 약간의 우려가 되었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다르고 그것을 보여주는 방식이나 공간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제 워밍업이 무르익어 가는 시점에서 앞으로는 다른 형식의 경험과
만남들이 시도될 것으로 보인다. 작가들은 참가자들에 대한 대략적인 성향과 몇몇 인원들의 디테일한 부분을 파악해 나아가고 있는
단계이며 만남이 거듭되면서 발견되는 새로운 지점들을 통해 '총체적난 극'의 방법들을 차근히 모색해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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