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30일
<총체적난 극> - 여섯번째 만남
깊어가는 가을의 시간과 함께 <총체적난 극> 만남의 시간도 점차 무르익어가며 모든 참가자들과 작가들에게 있어 이 시간은 생활리듬처럼 일상의 한 부분이 된 듯하다. 많은 일들을 해야만 하는 복지관 생활 가운데 일주일에 한 번 가지는 <총체적난 극>만남의 시간을 여러 친구들이 기다린다는 신서영 복지관 선생님의 말이 생각난다. 모두들 가볍게 안부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지난 주 요리 시간은 어땠는지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았다' 라는 단순한 표현으로 피드백을 해주었지만 표정을 보니 아주 인상적인 경험은 아니어도 좋은 감정과 기억을 가지고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재인씨와 석원씨는 트럼스틱을 준비해왔고 여러 차례 만남 중 활발한 분위기를 유지했던 정란씨는 점차 기운을 잃어가는 느낌이었다. 오늘 따라 태윤씨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보였다. 주환씨는 회차를 거듭할수록 보다 적극성을 띄고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석원씨의 드럼 연주는 비록 드럼은 준비되어있지 않지만 드럼스틱을 이용해 박자감각을 보는 것, 그리고 몸이 기억하고 있는 행동을 계속해서 다시 되새겨보는 것이 중요해 보였다. 석원씨의 연주를 들어보기 위해 모두가 잠깐의 정적을 만들었으나 석원씨는 드럼치는 시늉을 몇 번 할뿐 결국 연주하지 않았다.
드럼 스틱을 들고 그저 가만히 앉아있거나 발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풀거나 턱을 앞뒤로 왔다 갔다 하고 무언가 되새김질 하는듯한 석원씨 특유의 제스쳐만 반복되었다. 몇 분이 지나 정적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듯한 석원씨를 배려하며 김월식 작가가 분위기를 다듬었고 석원씨는 드럼 스틱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선생님들이 가지고 있는 장기를 보여주는 시간을 잠시 가진다고 한다. 먼저 송미경 작가의 피리연주를 들어보기로 하였다. 송미경 작가는 새끼손가락 만한 굵기의 피리로 경기도 민요 '긴 아리랑'을 연주한다. 모든 참가자들이 생소한 악기인 피리가 내는 특유의 소리에 집중하였다. 비록 병호씨는 연주 내내 집중하지 못하고 핸드폰을 만졌으나 연주가 끝난 뒤 누구보다 커다란 박수갈채와 환호를 보냈다. 이런 순간에 병호씨는 광대같은 표정을 하고 탄산가스 소리가 나는 웃음을 지어보이곤 한다. 재인씨는 피리 연주에 상당히 집중하는 것으로 보였다. 피리연주가 이어서 계속 되었고 병호씨의 행동은 같았다.
이어서 재인씨의 춤을 보기로 하였다. 재인씨가 춤추는 시간은 이제 정기 코너처럼 되어버렸고 모두에게 당연한 듯한 시간으로 자리매김 한 것 같다. 매번 비슷한 댄스 비트에 몸이 알고있는 익숙한 동작을 실어 나르는 재인씨. 엠피쓰리를 틀고 이어폰을 귀에 꼽은 채 춤을 추는 재인씨는 엠피쓰리를 남에게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노래를 스피커로 틀고 다함께 들으며 춤을 추면 안되겠냐는 제안에 제인씨는 썩 내켜하지 않았다.
결국 제인씨가 듣고있는 노래를 스피커로 따로 틀어놓고 제인씨의 춤을 바라보았다. 재인씨가 대중가요에 맞춰 춤을 추고있는 가운데 석원씨는 드럼스틱을 한 손으로 두드리며 박자를 맞추기 시작한다. 재인씨의 춤과 석원씨의 단순한 박자가 얼개를 짜고 교차하면서 즉흥 잼과 비슷한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물론 당연한 것이겠지만 장기를 보여주는 자리에서 정적이 감도는 순간 한 사람에게 주목되는 긴장감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드러내는 데에 있어 어려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누구 하나 시키지도 않은 이 순간에 석원씨가 드럼스틱을 들고 박자를 탈 수 있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상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몸이 기억하는 곳으로 보다 유연하게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는 길로 접속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어서 주환씨는 현철의 사랑의 마침표를 불렀다. 주환씨는 원곡의 박자와 음정에 충실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말과 노래사이에서 어슬렁거리며 노래한다. 그 어슬렁거림은 평소 주환씨가 걷는 걸음걸이와 왠지 닮아 보인다. 사물과 풍경 사이로 어슬렁거리며 열린 문들을 확인하는 그 느슨한 치밀함은 역시 노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박자와 음정 자체는 매우 느슨하지만 모든 가사를 빼곡히 외우고 있다는 점은 주환씨가 가진 촘촘함의 영역을 보여주고 있다. 느슨한 치밀함. 그 아이러니한 정서의 조합은 주환씨의 위치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다시 저곳에서 이곳으로 위치를 바꾸며 다차원적 성격의 인물로 변화시키곤 한다.
계속되는 장기자랑 시간에 이어서 태윤씨와 정란씨가 각각 노래를 한 곡씩 불렀다. 태윤씨는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몸을 이용하여 플레이 하는 것에서는 누구보다 적극적이었으나 개인에게 주목되는 순간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듯 했다. 정란씨도 다수 사이에서 활동하는 것은 활발한 편이나 다수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있어서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이 장기자랑 시간은 개인의 능력을 파악하고 그것을 발전시켜 나아가는 것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연습의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조강이 작가의 몸을 이용한 놀이방식은 단순한 박수에서부터 시작하여 여덟 박자까지 만들어내고 그 박자 안에 특정한 움직임을 넣어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박자 안에 동작을 넣음으로써 율동감을 익히는 시간이었다. 석원씨는 몸을 잘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으나 김월식 작가가 맨투맨 방식으로 밀착해서 석원씨를 잘 이끌어 주었고 주환씨는 함께 따라 해보려는 의지를 가지고 몸을 움직이고 있었으나 상이한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역시 다른 작가가 주환씨를 잘 이끌어주며 그룹 내에 참여와 집중을 유도하였다. 재인씨는 박자에 맞추어 동작을 만들어내는 일에 매우 강한 흥미를 느끼며 어떤 참가자들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조강이 작가에게 자신의 의견을 어필하며 안무를 구성하였고 평소 석원씨가 자주 쓰는 동작들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었다.
잠깐동안 박자감각을 익혀본 뒤에 5명씩 세 그룹으로 나누어 박자를 만들어내고 그 박자 안에 몸동작을 넣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석원씨가 있는 그룹은 모두 함께 팔을 이어잡는 동작을 통해 따라 하기보다는 함께하기에 더 초점을 맞추어 전체적인 균형감을 회복하려는 듯 보였고 재인씨가 있는 그룹은 개인의 동작을 모두 연결시켜서 표현하였다. 김월식 작가의 그룹은 함께 원형으로 모여 몸과 몸이 부딪히며 자연스럽게 스킨쉽을 시도하며 친밀감을 형성하고 있는 듯 했다.
세 팀은 팀 별로 모여앉아 팀 이름을 정하고 팀을 나타낼 수 있는 형상을 지점토로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형상에 이야기를 만들어 발표하기로 하였다. 승동씨는 직접 만들어보는 조형작업은 처음 해본다고 하였지만 다년간 사물을 보고 드로잉하며 향상된 관찰력과 조형성이 튼튼해 보였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꽤 균형잡힌 형상을 만들어 냈다. 세 팀 모두 팀 안에 있는 사람들의 개별성을 생각하며 오브제를 만들었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면서 전체적인 친밀도가 높아지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날 작가들은 몸과 언어의 소통이 어려운 친구들을 케어하며 보다 밀착된 상태에서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였다. 작가들은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이처럼 유동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다양한 리듬으로 참가자들 사이에서의 균형을 만들어 나가려 한다. 전체 참가자들의 지형도가 상당부분 구체화된 이 시점에서 개개인의 시간과 공간속으로 접근해 들어가는 것, 마음으로 대화하며 또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을 앞둔 <총체적난 극>의 위치가 기다려진다.
'PROJECT > 2013-'총체적난 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총체적난 극 -탁구 1 (0) | 2012.11.20 |
---|---|
2012 11 6 총체적난 극 (0) | 2012.11.10 |
총체적난 극 다섯번째 만남 ..미술관을 요리하다. (0) | 2012.11.08 |
총체적난 극- 네번의 만남 (1) | 2012.10.30 |
오늘의 '총체적난 극'은 경기도미술관에서 (0) | 2012.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