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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2013-'총체적난 극'

총체적난 극 -탁구 1

탁구1

주 금요일 오전 복지관의 스케줄은 여가활동을 위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총체적난 극의 누구는 노래동아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또 누구는 화랑유원지의 운동장으로 나가서 축구를 한다. 사진을 찍는 친구들도 있고 또 누구는 탁구를 친다. 무엇을 하든지 자신이 좋아서 하는 여가 활동이라는 측면에서 금요일 오전은 복지관의 모든 장애우 들에게 매우 중요하고 즐거운 시간이다. 즐겁고 재미를 위해서 자신의 시간을 사용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 어떤 목적성도 즐기는 것을 이길 수 없다. 이 즐거움은 놀이와 같은 즐거움이고 놀이는 목적성을 배제한다는 측면에서 창의적이다.

 

놀이에는 분명한 목적이나 동기가 없다. 결과를 설명해야 할 필요도 없고,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도 아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상징화되기 이전의 내면적이고 본능적인 느낌, 정서, 직관, 쾌락을 선사하는데, 바로 그것들로부터 창조적인 통찰이 나온다

놀이는 우리 자신만의 세계와 인격, 게임과 규칙, 장남감, 퍼즐을 만들게 하여 지식을 변형시키고 새로운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이것들을 통해 새로운 과학과 예술이 가능해 진다.

-‘생각의 탄생, 로버트루트번스타인 저, 박종성 옮김, 에코의서재, 322p’

 



119일의 탁구동아리는 변함없이 오전 920분에 복지관 3층의 탁구 동아리 실에서 모임을 시작했다. 탁구 동아리는 대략 10여명의 장애우 친구들과 안산시 와동에서 탁구장을 운영하고 계신 선생님의 지도로 진행된다.

총체적난 극에 매번 친구들을 인솔해 주는 신서영 복지사와 공익요원도 매번 함께 한다. 김월식 작가와 곽동열 작가는 10월 초순부터 다섯 번의 탁구 동아리 모임에 함께 하였고 특별한 개인 스케줄이 없는 한 총체적난 극이 끝나는 시기까지 탁구 동아리 모임에 함께 하기로 한다. 사실 김월식 작가는 어린시절부터 탁구를 좋아하고 열심히 즐겨온 탁구 매니아이다

특히 김월식 작가는 어린시절 국가대표 남자 주장을 지낸 김진국 선수의 탁구 구장에서 탁구를 배웠고 그 인연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세계대회 구기종목 우승의 주역인 탁구계의 대모인 이 에리사와 함께 탁구를 친 기억도 갖고 있다. 훗날 이 애리사 선수는 태능 선수촌의 촌장까지 역임했으니 김월식 작가는 어린 시절의 그 기억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탁구동아리의 시작은 스트레칭이다. 탁구 지도 선생님은 오랜시간 친구들과 탁구 지도를 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친구들의 상태를 면밀하게 살피고 말을 건네며 열정적으로 탁구를 즐길 수 있도록 유도 한다

그리고 단순하게 탁구를 즐기는 것을 넘어 몸 움직임에 소극적이고 위축된 친구들의 몸 훈련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듯 보인다. 때문에 본격적인 탁구를 진행하기 전에 스트레칭은 탁구 동아리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과정이다. 모두가 둘러 서서 가볍게 몸을 흔들거나 뛴다. 그저 가볍게 몸에게 신호를 주는 행위로써의 제자리 뛰기는 마치 몸에게 자 이제부터 몸을 쓰기 시작할거야라고 말을 건네는 방식이다


일 주일 동안 대부분 실내에서 직업훈련을 해 온 친구들의 몸은 그에 맞게 디자인되거나 최적화 되있기가 십상이다

게다가 야회활동도 드물고 여러 가지 상황 상 몸 쓰기에 늘 소극적인 친구들에게 탁구동아리의 스트레칭이야 말로 자유롭게 몸을 활용하여 우뇌를 자극함으로써 내면화 되어 있는 감성들을 활성화시켜 개별적인 감정과 표현을 드러낼 좋은 기회로 작동될 수 있다

몸 활용을 통하여 획득되고 성찰되는 자신감이야 말로 우리 구성원들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동력들이다.

이 날은 그 동안 장기간 약물 치료 때문에 무기력하던 석원씨의 제자리 뛰기가 인상적이였다. 잠시지만 집중적으로 뜀을 뛰는 석원씨의 얼굴에 무한한 즐거움의 미소가 스쳐간다. 그리고는 조금씩 집중감을 잃어가며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스트레칭 도중 도중 되살아 나는 석원씨의 감각들이 특정 부분 분명하고도 뚜렷하게 탁구를 즐기는 순간을 보여준다

동영상처럼 끊어지지 않는 시간으로 연속되는 장면은 아니지만 스틸 컷 사이 사이에 존재하는 여운처럼 석원씨는 즐거움과 즐거움의 사이에 여운의 공백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재인은 탁구시간에 늘 열심히 한다. 스트레칭에 있어서도 누구보다도 열심이다. 재미있는 것은 실재 탁구를 진행하면 재인의 탁구 실력은 친구들 중에서 제일 뒤 떨어지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칭은 매우 즐겁게 열심히 하는데 재인은 실력의 정도보다는 본인의 즐거움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 승패를 다루는 스포츠를 대하는 매우 중요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인은 실천하고 제안하는 듯 보인다. ( 제인은 시력이 좋지 않아서 원거리에서 날아드는 공을 인지하는 시력의 확보 거리가 남들 보다 매우 부족하다.)

때문에 늘 공에 대한 반응이 늦어 보이는데 아랑곳 하지 않고 탁구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 제인이 평소 춤추기를 좋아하듯 공을 받아내려는 몸의 반복적 움직임에서 춤의 패턴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주환은 열려있는 문에도 늘 관심을 갖는데 문이 조금이라도 열려 있으면 늘 주환이 먼저 가서 문을 닫고 또 옷걸이도 늘 나란한 방향으로 놓여 있는 것에 관심이 많다. 이 주환만의 생활 패턴은 삶의 영역에서 훈련받은 에티켓에 대한 강박일 수도 있고, 아니면 주환만의 삶의 방식, 즉 자신이 스스로 삶에서 안정을 찾아나가는 일종의 징크스일 수도 있다.주환은 탁구동아리실 안에서 제일 분주하다탁구장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며 평소처럼 손을 앞뒤로 흔드는 가벼운 몸짓을 하며 옷을 걸어놓은 옷걸이들이 늘 가지런하게 한쪽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관심을 갖는다혹 옷걸이 중 한 개가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때면 조용하고 민첩하게 옷걸이 방향을 다른 옷걸이들과 같은 방향으로 바꾸어 놓는다.

주환의 탁구 실력은 스피드가 돋보인다. 누구보다도 빨리 리시브을 하는데 그 속도는 일반적으로 스매싱에 가까울 정도이여서 웬만한 실력자가 아니고서는 그 공을 받아 내기가 어렵다. 공을 주고 받기는 놀이와 게임을 넘는 탁구만의 중요한 소통방식이다


흔히 탁구를 치다보면 게임을 제외하고는 내가 일방적으로 상대를 이기려고 공을 치는 경우는 드물다.말하자면 탁구라는 운동은 상대방이 공을 잘 받아낼 수 있도록 공을 건네는 운동이다. 적당한 속도와 방향으로 일정하게 상대방이 공을 치는 몸짓의 기분을 상대방이 텐션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주고 받기가 지속되면 탁구공은 어느새 둘을 하나의 몸짓으로 연결하는 신호체계가 되고 사람들은 이 신호를 악보삼아 함께 연주하는 연주가가 되거나 익숙한 무희들이 리듬을 타고 춤을 추듯 리듬에 몸을 맡기는 댄서들이 되고 만다


여러 의미에서 탁구를 같이 치는 일련의 무리들은 함께 공연을 한 듯한 친밀감과 연대감이 생기고 그 합의 경험이야말로 몸과 감정이 함께 오고가는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소통의 경지를 넘어선다. 그런데 지금 이곳의 탁구는 조금 다르다

합을 만들지 못하는 탁구가 대부분인 우리들의 핑퐁은 핑은 있는데 퐁은 없고 퐁은 있는데 핑이 예상하는 시간에 도착하지 않는다. 전조가 계속되어서 매우 고급스럽거나 난해한 컨템포러리 음악이 이러할 까? 즉흥적이고 찰나적인 감성의 번역에 익숙한 고수들의 잼을 보는 듯한 인상이기도 하다.

탁구대라는 하나의 물리적 공간을 두 개의 레이어로 나누어 쓰는 듯한 우리의 탁구는 그래서 이상하다. 하나의 시간대로는 어눌하나 두 개의 시간대를 중첩하여 하나의 오브제를 마주하는 듯한 우리의 탁구는 어찌보면 상대방이 없이 탁구를 치는 두 개의 상황을 한 공간에 편집해 놓은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이상하고 낯 선 탁구의 정체는 총체적난 극이 처음부터 갖고 있던 우리들의 차이와 거리를 드러내는 듯하다. 겹쳐지되 밀착되지 않고 밀착되어도 스며들 수 없는 차이들이 핑퐁을 한다. 가끔 핑퐁 사이 사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서로 다른 레이어들의 문이 열리고 그 열린 문 사이로 공이 오가기도 한다. 그리고는 그 문은 곧 다시 사라진다.

우리는 그 짧은 시간 일반적인 핑퐁을 경험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일반적 핑퐁이 사라진다고 해서 우리의 핑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일반적 핑퐁의 안정감과 달콤함이야 말로 총체적난 극이 버리고 시작했던 일반화의 프레임이 아니었던가? 중요한 것은 탁구를 통하여 사유하고 고민할 수 있는 지점들이 발생하고 또 이 지점들을 탁구를 치면서 받아들인다. 어쩌면 우리는 탁구라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마주하고 있지만 주고 받음이 다르고 어색한, 어눌하고 불확정적인 그런 삶이다.

하지만 불확정적인 것이 불안한 것도 아니고 불행한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 불확정한 과정이 있다는 것이 예측 할 수 없는 핑과 퐁만큼 유니크한 기분 좋은 프리미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게임에 승리할 수 없으면 게임의 룰을 바꾸어라!” - 백남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