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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2013-'총체적난 극'

11월 20일

 

 

<총체적난 극> - 9번째 만남

서로 다른 표정과 리듬을 가지고 아홉 명의 참가자들이 세미나실로 들어온다. 그 중 주환씨의 인사는 유독 밝아 보인다. 자리에 앉아 김월식 작가가 1월에 있을 '총체적난 극'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연극이나, 악기연주와 같은 공연이 아닌 개인이 잘할 수 있는 것, 좋아하는 것으로 공연을 만든다고 한다. 김월식 작가를 비롯해 다른 작가들이 껴안았던 많은 고민, 생각들이 쉽고 단순한 말로 전달되었다. 오늘은 1월에 있을 극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물론 석원씨의 퍼포먼스를 보고 난 뒤에.

 

 

마사지

스피커에서는 대중가요가 되어버린 CCM -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리고 먼 바다를 바라보는 듯 먹먹한(혹은 멍멍한) 표정으로 드럼 스틱을 손에 들고 있는 석원씨가 있다. 노래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참가자들은 하나 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지금보다 몸 상태가 좋았던 시절 드럼과 클라리넷 연주를 꽤 오래 했던 석원씨에겐 분명 이와 비슷한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먹먹한 표정을 하고 있는 석원씨 얼굴엔 순간순간 짧은 찡그림이 스쳐 지나간다. 기억을 자극하는 스파크나 예민한 신경계를 건드리는 듯 한 느낌이 들었으나 노래가 끝나기 까지 스틱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어서 국민가요 급의 노래 '마법의 성'이 흘러나온다. 쉬운 멜로디 라인에 오래된 노래이지만 아직 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노래이기 때문에 석원씨의 기억을 더욱 더듬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한 주 전의 기억도 잊어버리는 상태이지만 과거 건강했던 시절의 기억엔 오히려 접근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지 않을까. 조강이 작가가 옆에서 박자를 맞춰주자 석원씨는 한 손으로 조금씩 박자를 타기 시작하고 곧 양손을 이용하여 드럼 치는 시늉을 낸다. 박자와 그저 두들김 사이를 오가며 점차 싱크가 맞춰지고 곡의 특정 부분에서는 분위기에 맞는 연주가 들어가기도 한다. 고조되는 부분과 끝나는 부분의 이입이 지금까지 보았던 연주 중 가장 깊이 있게 들어갔던 것 같다. 드럼을 연주하는 여부와 관계없이 과거 익숙한 환경을 조성하여 석원씨의 머릿속에서 발생하는 전기 자극들 그리고 과거 감각의 일부를 현재로 복귀 시켜보려는 노력이 중요할 것이다.

  

    

대화 그 이후

장애우들과 밀착된 상태에서의 개인적 대화들은 장애라는 특수한 지점에서 벗어나 우리와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개인의 모습을 드러내주었다. 이로 인해 작가들 사이에서 장애우들을 대하는 태도는 조심성 뒤에 숨어있던 내밀한 편견에서 일상적 대화나 태도로 관점이동 한다. 작가들 스스로의 태도와 관점이 변화한다는 점에서 '총체적난 극' 의 교육적 성격은 쌍방향으로 발생한다. 장애우들에게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통해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감각을 마사지하고 다양한 감성들을 접하며 여러 욕망을 발견하게 하는 것. 작가들에겐 그에 대한 피드백 과정을 보고 작가 스스로가 움직이고 관점 운동 하는 것. 양자가 양자를 교육하고 깨치게 만드는 것이다.

 

장애우들을 대하는 태도가 재전유되고 보다 일상적 가치들로 바뀌었다는 것은 그들이 껴안고 있는 장애적 지점에 대해 환기할 수 있는 여지를 줄어들게 하기도 한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기'는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고 몸을 통해 순환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장애, 비장애를 떠나 모든 개인들에 대한 가치이다. 장애인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여기서 장애인은 사회적 소통과 활동이 어렵다고 사회가 판단한 사람을 말한다. 그러한 환경에서 장애인은 비장애인의 방식으로 욕망을 몸으로 드러낼 수 없다. 왜냐하면 욕망 자체는 같을 지라도 그것을 몸으로 드러내는 통로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에 다시 집중해보고 그들의 욕망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전복되는지 혹은 그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사회적이지 않더라도)자신을 드러내는지 더 들어다 보아야 하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그들의 욕망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