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3일
<총체적난 극> - 여덟 번 째 만남
태윤-정란-승동,재인,병호,석원,유림,주환,선혜,
비 오는 늦가을의 추운 날씨 속에 9명의 참가자들이 우산 소리를 내며 세미나 실로 줄줄이 들어온다. 모두들 두터운 옷을 껴입고 추위를 달래는 모습이었지만 유독 주환씨 만은 늘 입고 다니는 민트색 후드티를 겉옷으로 입은 채 나타났다. 날씨와 매칭되지 않는 옷차림 이었지만 늦가을의 추위보다 한 층 더 차갑고 무심한 시선으로 추위를 대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걷는다기보다 무언가 지나쳐간다는 느낌으로, 노래한다기 보다 음표와 박자 사이를 무심하게 스친다는 느낌으로.
모든 참가자들이 들어서면서 어나운스 없이 벽에 프로젝션 되고 있는 지난 만남들의 편집된 영상을 참가자들은 자연스럽게 바라본다. 홈비디오처럼 가족 같은 분위기로 편집된 지난날들의 영상이 혹은 기억들이 참가자들의 표정을 스치며 순간순간 지나쳐 가는 듯. 그 중 몇은 웃고, 몇은 생각보다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라운드 테이블처럼-그러나 테이블은 없다. 이 단순한 일상적 풍경 사이로 총체적난 극이 가진 특수한 상황이 환유되는 듯하였다.- 원형으로 앉아 단순한 게임으로 여덟 번째 만남의 자리를 시작해 본다. 옆 사람에게 귓속말로 말을 전하고 그 말이 다시 한 바퀴 되돌아오는 게임,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등에 손가락을 이용해 말을 써서 전하는 게임이다. 몸의 일부분을 밀접하게 맞대고 청각과 촉각에 집중하여 말을 실어 나르는 이 게임은 모든 사람들의 감각을 연결해보는 게임이다. 재인씨와 병호씨는 그런 밀접한 스킨쉽 자체에 매우 부끄러워하는 모습이다. 병호씨는 굉장히 호탕하게 부끄러워하며 재인씨는 얼굴을 붉히며 화사하게 수줍어한다. 한 바퀴를 다 돌아온 시점에서 전달된 언어는 매우 다른 말로, 혹은 상형문자와 같은 이미지로 변화되어 있었다.
조강이 작가와 간단한 스트래칭을 한 후 그룹을 나누어 작가와 참가자들 간에 보다 친밀하고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하였다. 조강이 작가는 온몸 스트래칭으로 시작하여 안면 스트래칭으로 이어지면서 상이한 두 감정을 표정으로 드러내는 게임을 해본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표정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알면서도 부끄러워 드러내지 못하는 일반적인 경우도 있었고 몇 사람의 경우엔 무표정과 놀라운 표정의 경계가 모호한 사람도 있었다. 재인씨의 경우 참여하는 것에 적극적이었지만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주환씨도 표정에 변화는 없었으나 제스처를 이용해서 표현하였다. 주환씨는 오늘 움직임이 다른 날보다 격해 보인다. 어슬렁거리는 정도가 거칠어 보였는데 다소 상기된 상태처럼 보였다. 신서영 선생은 주환씨의 상태를 주의 깊게 바라보다 매우 익숙한 듯 대처하고 상기된 주환씨를 금새 안정적인 상태로 되돌린다.
이 날 카페에서 진행된 대화는 네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진행 되었다. 일상적인 이야기로 시작해서 개인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대화들까지 마음을 열어야 가능한 말들이 테이블 위로 오고 갔다. 지금껏 '총체적난 극' 만남이 진행되어온 세미나룸 이라는 공간은 전체적인 균형에 포커스를 맞춘 단체 활동에 가까웠다면 카페에서 이루어진 대화시간은 개인에게 집중된 상태에서 사적 이야기가 발생하는 시간이었다. 서로 마음을 열지 않으면 내밀한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통로 역시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태윤씨와 정란씨가 요새 들어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이유는 복지관 생활을 하며 둘 사이에서 잦은 트러블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로인해 서로에 대한 미움이나 악감정이 점차 커지는 중이다.
태윤씨는 토요일마다 서울에 트럼본을 배우러 간다고 한다. 트럼본을 배우는 이유는 악기 연주에 대한 흥미에 있다기 보다 호흡이 짧고 좋지 않아서 그러한 신체적 결함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에 있었다. 태윤씨는 가수나 작곡가가 꿈이다. 이미 기존에 써놓은 곡들이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되어 학교에 진학할 생각은 없으며 고등학교 졸업에 만족하고 있는 상태였다. 지난 만남들을 통해 승동씨와 태윤씨는 아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각별한 사이로 보였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은 사이라고 한다. 말과 행동이 너무나도 맞지 않아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주환씨는 매번 만남마다 또 다른 이미지를 드러내거나 발견되고 계속해서 관점 이동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주환씨의 변화하는 나이처럼 말이다. 대화 시간동안 주환씨는 흥분된 상태가 계속해서 찾아왔고, 얼굴이 벌개질 정도로 상기되어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주환씨의 문화적인 취향은 다소 매니악한 지점으로 연결되어있다. '사망유희' 성룡의 '취권', '현철'의 노래로 미루어 보아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진 문화적 감수성이 아닌 다른 지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림씨는 단체 활동을 할 땐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날 대화에서는 적극적으로 소통하였다. 소통의 정도가 좋지 않은 편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지난날과는 달리 유림씨는 그저 소극적인 성격의 평범한 개인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었던 것이다. 유림씨는 요리를 좋아하지만 볶음밥과 비빔밥 이외엔 해보지 않았다고 해서 필자는 약간 당혹스러웠다.
병호씨와 개인적으로 밀착된 대화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 병호씨는 웃을 때와 무표정일 때의 표정 변화가 매우 심하기 때문에 무표정일 때는 분장을 지운 삐에로 처럼 냉소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병호씨는 대화할 때나 단체 활동을 할때 집중하지 않고 자주 핸드폰을 만지다가 어떠한 해프닝이나, 특기할 만한 현상, 상황이 생길 때에 돌연 집중하는 듯 하다.
재인씨는 현재 '총체적난 극'의 만남에 오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한다. 예전에 복지관에서 작은 말썽을 부린 적이 있어 그 이유로 만남의 시간을 한 번 제지한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신서영 복지관 말에 의하면 그 이후로 말썽부리는 일 없이 매우 좋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날은 대화를 통해서 장애우로서의 특수한 지점이 아닌 보통 사람처럼 연애를하고, 다툼이 있고, 애니팡을 즐겨하고, 영화를 좋아하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 개인을 마주할 수 있었다. 장애우들과 함께 만남을 가지면서 중점적으로 바라보았던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의 특성은 이날의 대화를 통해서 지극히 평범한 질서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전환 하게끔 하였다. 평범한 개인과 이 사회에서 구분되고 있는 장애를 가진 신체가 덜그럭 소리를 내며 부딪히고 있다.
-김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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