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2012년 10월부터 총제적난 극에 합류된 뒤, 나는 장애인들과 4번의 만남과 1번의 번외 만남을 가졌었다. 이제 일반적인 학생들과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적응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심스럽게 총제적난 극의 합류하라는 통보를 받은 나로서는 사실 고민이 많은 발걸음이었음을 고백한다. 나에게는 청소년 때 봉사활동 시간을 채우려 했던 장애인 복지관에서의 활동은 그야말로 정신적 충격으로 다가왔었기 때문이다. 자기 의지대로 되지 않는 충동적 행동들과 몸 가누기는 내가 조절 해줄 수 있었던 부분에 가늠을 알아내기란 힘이 들었다. 그것이 내가 장애인과 만났던 마지막 접촉이었다. 그런 인식이 아직도 머리에 뿌리박힌 채 고정되었던 나에게 총체적난 극에 합류하라니, 내가 그들 대신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무엇을 알려줄 수 있을까. 그렇게 나 자신 스스로에 반문해 보며 첫 시간의 만남을 가졌었던 것으로 생각난다.
상황파악
이날의 첫 번째 만남에서는 각 분야의 예술 작가들이 이 전에 지속하였던 만남 때문인지 그들 나름대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단계였다. 첫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새로운 선생님의 등장에 환호해주던 정란 씨와 현혜 씨가 생각이 난다. 하지만 그들의 인사와 웃음에 가려지지 않는 나의 어색함과 떨림은 아마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것으로 안다.
지금으로썬 미안하기도 했던 내 조심스러운 행동이 어쩌면 내 인식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차별이라는 어두운 그림자였던 시선이었음을 부정하지 못한다.
이후 내가 함께한 두 번의 만남까지는 지속적인 관계의 끈을 연결하기 위해 몸을 이용한 움직임과 감각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움직임들 혹은 그들의 취미생활과 관심거리를 알아보기 위한 알아보기가 진행되었다.
그러면서 가까이하게 된 병호씨는 누구보다 덩치가 크지만, 누구보다 여린 마음씨와 소리를 지르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알 수 없을 것 같은 웃음소리는 나를 그의 마음에 함께 할 수 있게 한 사람이었다.
예의 바른 인사와 쑥스러워 눈도 잘 못 마주쳐 당황스러운 표정을 늘 갖추고 있는 그는 우리와 같이하는 시간에 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내 얼굴을 찍을까 말까 몇 번의 서성인 끝에 쑥스러워하며 몰래 찍으려는 행동을 감지한 나는 얼굴을 돌려 그의 초점이 부드럽게 맞출 수 있도록 해주었다.
빼곡히 파일 따라 인물의 사진이 즐비한 그의 휴대전화 안 앨범 속에는 그와 함께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사진첩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그를 놓아주었다.
사실 병호씨가 떠나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적극적인 관심에도 무심한 그를 보면서도 내심 가까이 다가가길 원했지만, 그는 어느 순간 다른 선생님을 선택하여 떠나버렸다.
내심 서운하기도 했지만, 여자 선생님들에게 특히 쑥스러움을 많이 겪는 그이기에 나를 떠났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오히려 나의 관심의 눈길보다. 그의 관심의 눈길을 받아주는 사람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그의 관심사보다 나의 관심을 그에게 내비쳤던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나의 오류였던 것일까.
새로운 만남
떠나간 병호씨를 뒤로하고 나는 혼란에 빠졌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들 분주한 선생님들 뒤로 덩그러니 혼자인 나는 어느덧 덩그러니 혼자 남은 석원씨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를 보았다.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앉아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텅 빈 교실에 걸음을 걸어본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급속도로, 아니 곧 자신의 기억마저 잃어버릴 것 같은 사람이다. 재촉하면 할수록 자신을 놓아버리는 석원씨에게 나는 손을 잡아본다. 내 눈을 맞춰보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이다. 다시 중얼거리며 허공을 둘러본다. 하지만 한 가지 놓지 않는 내 손은 분명 나와 이야기를 함께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 오늘 기분 좋아요?’ 물어보면 ‘네’ 오로지 이 대답을 하는 그에게 무엇을 하려하는 것이 그에겐 쓸데없음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했을 클라리넷을 가져왔다, 수십 번의 반복된 클라리넷 조립은 늘 제자리에서 맴돌았고, 조립이 끝난 후 연주 또한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그 애 타는 움직임은 간절함 마저 녹여버리는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무엇인가 보려고 했던 간절함은 곧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였던 것일까. 이제는 더 이상의 조립도, 반복적인 행동마저 보기가 쉽지 않다. 때론 우리끼리 즐겁게 연주하고 노래를 듣는 사이 석원씨는 한쪽에 앉아 박자를 맞춰주는 것이 우리에게 큰 관심사였다. 석원씨는 무뎌져 버린 머리가 아닌 몸으로 기억해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어릴 적 꿈이 선생님이었을 만큼 포부가 있었던 그는 이제는 글마저 한 줄 읽는 것 또한 잠시의 기억으로 다가오는 듯 보인다..
두 번의 데이트에서 함께한 우리는 다른 팀들과 달리 제일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쉬는 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노래를 함께 들으며 그림책을 보면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낸다. 이것이 그에게 가장 행복한 한순간의 한 부분이 된다면 예술이 장애인들에게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나의 첫 고민이 조금씩 해결이 되는 과정을 나 역시 석원씨에게 배우는 중일지도 모른다.
내 친구
이번 총체적난 극에서 참여자들은 본인과 같은 또래인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 숙자 씨는 어느 순간 나의 옆에서 함께 했던 친구이다. 현혜 씨와 정란 씨 등의 다른 여자 분들과 다르게 무척이나 조용한 그녀는 눈 맞추기조차 쉽지 않았고 우리의 대화는 최대한 얼굴을 맞대어 얘기하는 정 넘치는 사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그녀의 입술이 나의 귀에 밀착되어 최대한 대화를 이끌어 가지 않으면 그녀의 목소리는 그녀의 입속에 맴돌아야 했기때문 쉽지 않은 우리의 대화법이다. 그런 그녀의 기분과 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선생님은 복지관의 신서영 선생님이 유일해 보인다. 이런 그녀의 섬세하고 차분한 행동은 우리의 미각적 관찰때 빛을 발했다. 구분정한 자세에서 오는 집중된 손놀림은 그녀가 음식 만들기를 좋아 함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그녀와 함께했던 데이트에서는 그녀가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녀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고 특히 라면을 끓일 수 있으며, 라면 중에서도 특정 라면에 대한 호전적인 입장을 내 비취기도 했었다. 하지만 라면보다 더 그녀를 웃음 짓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슈퍼주니어이다. 슈퍼쥬니어에서 려욱을 좋아한다는 그녀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활짝 웃어보인다. 그러면서 신서영선생님은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에서 그녀와 나, 그리고 석원씨와 함께 씨스타와 티아라의 음악을 틀어 춤을 쳐본다. 모든 동작을 알고 있었고, 가사도 입속에서 맴돌 뿐 멈추지 않는 그녀의 입술은 그렇게 정제된 춤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그동안 보인 숙자 씨의 힘없고 조용한 그녀의 몸에서 나오는 춤과 노래라니, 그야말로 놀라움이었다. 그리고 데이트를 하러 들어온 다른 무리가 합류되면서 그렇게 그녀의 춤도 멈추었다.
간혹 그녀의 이런 활기참이 다른 참여자들에게 가려 있는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그녀 역시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이 불편할 수도 혹은 쑥스러움을 탈 수도 있어 조심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평소때도 미동조차 예민한 그녀는 그 때문인지 날씨에 영향을 받는 것에 안타까울 뿐이다.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모든 몸과 정신에 기운이 빠진 듯 힘이 없는 그녀를 보면 그저 이곳에 오는 것만으로도 벅찬 몸임을 연신 드러내고 있었다. 때문에 지난 만남에서는 불행히도 비 오는 날인 동시에 그녀 역시 아파 오지 못했다.
사실 처음에 만남을 갖기 전에 생각했던 나의 걱정거리들은 아직도 한편에 자리 잡고 있지만 그런 걱정거리가 곧 비장애인과 장애인들의 관계에 대한 상호작용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나 역시 이들과 함께하면서 겪었던 자기고민과 반성들이 내 스스로 가치에 대해서 묻는 과정이 되고 있으며 그들 자신의 내비치는 관심거리, 취향, 성향들을 온전한 그들의 개인적인 주체로서의 인간임을 인정하며 다가가는 중이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아야 할 테지만, 지금으로써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자기 책임 적 입장보다는 그녀와 그와 함께하는 서로를 위한 일들이 될 수 있을 바란다.
2012년 11월 16일 -이 아 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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