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인 만남이 채 얼마 되기도 전에 우리는 곧 있을 총체적난 극의 공연에 대해 참가자들에게 알려주기로 한다.
애써 우리의 활동들이 부담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예술가들과 참여자들에게 다가오는 걱정거리는 지울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이것이 어떠한 형태로서의 프레임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모호한 가치에 대해 집중하게 만드는 D-DAY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게 우리의 공연 이야기를 뒤로하고 마주앉아 본다.
흐트러져버린 혹은 경직되어있는 우리의 시선과 잠시 정적된 시간은 우리가 서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해놓지 않은 날스러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오늘도 나는 석원씨의 옆에 않아 그의 행동을 초점을 맞춰본다.
오늘은 그가 좋아하는, 좋아했던 드럼 스틱을 몇 주 만에 가져왔다. 스틱을 두 손으로 쥐여주니 양 쪽 손에 하나씩 분리하여 쥐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곧 드럼 스틱이라는 것을 잃어버리기도 하듯이 이어 들려준 찬송가 노래를 그저 들을 뿐이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김월식 선생님께서 석원씨가 드럼을 칠 수 있도록 옆에서 권유해 보라고 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것마저도 무엇을 보여줘야 한다는 지도에 그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아닌가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곧 조강이 선생님께서 노련한 박자와 눈길로 그를 움직이게 한다. 노래와 음을 맞추려 하지만 내가 듣기로는 똑같은 패턴으로 구성된 박자 맞추기가 전부였다. 하지만 모두 그가 두드리는 스틱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하며 집중한다.
그를 보면서 아직도 나는 무엇을 조심스러워하는지, 이런 소극적인 행동들에 대해서 아직 명확하지 않은 나를 보게 되는 것에 나 자신을 실망하게 한다.
데이트
세 번째 데이트를 진행했다. 그동안 짧은 시간에 데이트를 진행하면서 조금씩 참여자들과 이야기를 하려고 무던히 애를 써보았기도 했던 나는 데이트의 시간이 몸풀기와 자신의 관심사를 보여주는 시간보다 좀 더 개인에 집중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사실 자신의 관심사를 보여주는 것 또한 개별적인 가치에 집중해주고 용기를 주는 일인 것은 확실해 보이나 그 행동을 들을 바라만 보는 나머지의 참여자는 그저 그들에게 박수를 쳐주는 일이 전부인 것을 나는 보아왔기 때문이다.
다시 데이트로 돌아와 오늘은 그동안 데이트를 진행했던 선생님을 뒤로하고 다른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중 항상 고개를 떨구며 초점을 맞추는 숙자 씨에게 다가섰다. 그녀에게 나는 어떤 선생님과 함께하겠느냐고 물어본다. 그러자 숙자 씨는 내 손을 잡는다.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해지는 상황들에 마음을 놓이는 숙자 씨는 그렇게 나와 짝이 되었고 마지막으로 선생님을 선택하지 못한 주완 씨는 얼떨결에 나와 짝이 되면서 주저하는 그를 보게 되었다.
(사실 여기에서도 나는 참여자들이 데이트에서 선생님들이 바뀌어버리는 것이 좋은 방향이 아닌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든다.)
주완 씨 역시 늘 함께했던 선생님과의 대화가 원활해 보였고 그를 찾아 눈길을 주기도 했지만 결국에 나와 짝이 된 것에 살짝 거부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꾸만 변해버리는 대상자들은 나에게 그에 관한 이야기를 얻어내리란 힘들었다. 주완씨는 대놓고 나와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동화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동화책으로 이야기를 건네본다. 하지만 듣던 것과는 달리 동화책을 읽지도 않고 그림만 뒤척이며 본다. 속으로 ‘글을 읽을 수 없나?’, ‘아니면, 글을 만화로 보나?’ 가지각색의 생각이 머리에 스쳐 갈 때쯤 내가 대신 동화책을 읽어내려간다. 주완 씨는 내가 동화책을 읽을 수 있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손끝으로 그 글을 줄 쳐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손끝에는 감정 없는 스침에 불과했으며 그 속도 또한 내가 읽어내려가는 것보다 앞서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던 중 목이 너무 아파 주완 씨에게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떼를 써보았지만, 그는 단순한 단어만 나열한 채 결국에 또 나를 외면하고 다른 동화책을 꺼내 보인다. 그런데 그 새 동화책은 글은 기껏해야 한 줄만 있고 모든 면이 알 수 없는 추상적인 그림으로 이루어진 것을 보고 나는 한 줄의 글만 읽어내려간 후 그림에 대해 나 역시 짤막한 단어와 문장으로 설명했었다. 그랬더니 주완 씨가 내 말을 이어 단어로 이야기하고 다시 나에게 글을 이어가는 물음을 해주는 것이 아닌가? 주완 씨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수많은 단어와 그림을 연결해 분명히 그 동화책을 이해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내가 오늘 안 주완 씨 보다 훨씬 그는 이야기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확실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주완 씨와 짤막한 동화 이어가기가 마무리 될 때까지 숙자 씨는 내 옆 소파에 누워 오늘 쌓인 피로를 잠시 풀고 있었다.
오늘 아침 7시에 기상한 그녀는 많이 피곤한 듯 연신 하품을 하였기 때문에 숙자 씨에게 휴식을 권했고 숙자 씨는 잠시의 망설임 없이 소파에 몸을 누이며 졸음을 청하는 시간, 내가 다가서자 그녀는 마치 잠을 청하지 않은 것처럼 눈을 껌벅였다. 그동안의 데이트에서 나는 그녀가 요리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앞으로 있을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그녀에게 말하면서 그녀가 집에서 하는 즐거운 일들을 기억해 보이기로 했다.
그러자 그녀는 역시 요리가 첫 번째 관심사였고 다음으로는 청소와 노래 듣기를 말했다. 그리고 공연으로 그녀는 요리하겠다고 하였다.
기억이 난다. 미각적 관찰 때 진행 당시 다소 구부정한 그녀의 자세에서 집중되는 손끝의 요리는 단연 섬세했고 즐거운 활동이었다.
나는 그녀의 관심사를 앞으로 진행하기 위한 것으로 그녀에게 필요한 수단들을 구상을 해야 될 것 같다.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섰던 오늘은 그녀와 함께 무엇을 해야 할 지 고민하는 일주일이 될 것 같다.
차이에 대한 해석
그렇게 대상자들과의 데이트를 마무리하고 우리는 수업을 정리한 뒤 회의를 가졌다. 역시가 맞는 것이었을까? 짧은 기간에 다가온 공연이란 형식 자체가 우리에게 부담감을 가져온 것일까. 처음에는 모든 뜻이 맞아가는 즐거운 고민과는 달리 조금씩 개인에게 다가오는 자기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상처가 깊어 보임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이런 일련의 계획되지 않는 시간을 마주하여 펼쳐내는 것이 용납이 안 되었던 것이지 혹은 내 자신에게 던져진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힘들었던 것인지, 당연히 차이와 차이가 만났으니 충돌된 불협화음임을 인정해야 하지만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그 충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그것 역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프래임에 나뉜 우리의 착각이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렇다. 나 역시 그들과의 만남에서는 여유로운 척 그들과 함께하는 어울림을 잘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들 뒤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떨쳐버릴 수 없게 된다. 또 한편으로는 나는 이런 고민이 당연히 발생하여질 수밖에 없으며 이런 차이들이 생성되는 현시점이 앞으로의 시간에서도 끊임없이 고민되고 우리 역시도 그들에게서 배워야 하는 입장을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처음 총체적난 극을 진행할 때 김월식 선생님의 기획의도와 같은 일련의 이런 편견과 갈등들의 협업과정이 곧 우리의 극임을 되새겨야 할 듯싶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목적성에 집중된 활동방향, 즉 연극이나 공연이 갖는 체험들이 아닌 개개인의 자발적인 행위에 의한 조건으로써 발생하여지는 것에 집중하여 구성원들에게 다양한 삶에 대한 방식들의 과정을 그대로 드러내 보는 협업과정인 것이다.
우리의 총체적난 극은 아마 지금부터 총체적난 국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인 인식에서 가져오는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응에 대한 기대감이라든지 사회적인 능력을 보는 것이라면 우리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오늘에서처럼 개개인에 다른 집중방식과 관심도에서 오는 당황스러움, 정적, 활기, 어디서 올지 모르는 우발적인 행동들에 집중하여 그 욕망을 해결할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도 그 불안에서 오는 심리적 갈등에 함께 하게 될 것이다.
2012년 11월 20일 -이 아 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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