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8일 이 아 람
승동씨
그가 얘기하고 싶은 것을 무엇일까? 그가 불명확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일까?
사실 다른 참여자들과 다르게 승동씨는 어딘가 불편한 것이 있는지도 모를 만큼의 체력과 인식을 가지고 있다.
아니면 대화를 많이 시도해보지 않아서 그를 잘 모르는 소리일까?
처음 몇 주간 그는 내 눈에 띄지 않았다. 다른 참여자들처럼 충동적인 시선과 행동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고 활동시간 내내 부끄러운 미소만으로 자신이 이 활동을 하고 있음을 비춰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다소 쉽게 생각했던 승동씨의 관심거리들을 나열하는 것에 문제가 부딪치게 된 것은 나를 적지 않게 무기력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초반 몇 번의 데이트에서 승동씨는 다른 작가들과 짝이 되어 이야기를 진행했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는 다른 작가들의 이야기로만 대략 인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였지만 내가 없던 시간에 자신의 작업들을 보여주어 아쉽게도 보지 못했고, 축구를 좋아하여 금요일마다 진행하는 동아리에서 축구를 하지만 금요일마다 나는 탁구 동아리에서 다른 참여자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에서는 꾸준히 게임을 즐기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 어긋난 만남을 해오고 있었다.
그러던 내게 어느 데이트 날, 그리고 숙자 씨가 몸이 좋지 않아 한쪽에서 잠을 청하는 사이, 나는 그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석원씨의 테이프드로잉과 다른 참여자들의 앱을 이용한 연주 등의 활동으로 부산스러운 장소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는 공간 한 쪽에 자리를 잡아 놓고,4절의 종이에 사인펜과 연필을 준비한 나는 승동씨가 자유롭게 그려보길 권유하였다. 하지만 아직 첫 대면에 어색한 우리가 단번에 이런 부산스러운 공간에서 자신의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불편한 시도였을까? 나 역시도 이 부산한 분위기에 적응 못하고 불편했으니 말이다.
시간이 흘러도 선뜻 선하나 조차 망설여 하는 그에게 그림 이어 그리기를 제안해본다. 선하나 긋고 곡선도 그어보고 어느덧 추상적 도형들이 만나 이미지가 형성될 때쯤 내가 생각하는 그 형상이 승동씨에게도 같은 인식으로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림을 더 그려보자는 이야기를 선뜻 건네지 못했다.
그러던 중 새 종이에 승동씨는 짧은 선들을 겹쳐 그려나가면서 그림을 그려 보인다. 그림 이어 그리기에서 자신이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 알려주기라도 한 것처럼 막힘없이, 그러나 눈치 채지 못하게 손목을 움직여 조심스럽게 그려본다.
그러는 사이 병호씨도 옆에 앉아 승동씨에게 무엇을 그리 걱정하느냐는 듯이 거침없이 그려나간다. 제법 그림을 그릴 줄 안다는 제스처로 말이다. 참여자들과 작가들의 몸의 비율을 잰다는 듯이 연필을 이용하여 한쪽 눈을 감아 초점을 맞춰보지만 이내 그리는 이미지는 종이에 채워지지 않는 거대한 집안에 들어가 있는 로켓. 그리고 반대편 승동씨는 4절 종이 비율에 자신의 그림을 맞춰보려는 듯 바다에 떠있는 배 한척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갈매기가 그를 대변해 주듯이 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좋아하는 색이 무엇인지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좋아하는 도구가 무엇인지 한 두 마디 건네 보지만, 그것마저도 확실치 않은 듯이 곰곰이 혹은 신중히 고민해보더니 대답은 이내 더는 생각나지 않던지 쓴웃음을 보인다.
그리고 배그림의 풍경이 다 그려졌는지 다른 새 종이로 바꿔보더니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이 별 의미 없어 보였든지 자신이 먹었던 사이다가 들어있는 컵을 그려 보인다. 채색은 하지는 않지만, 4B연필을 움직이며 데생을 선보인다. 그리고 축구공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관심사를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아니면 그 축구공을 꺼내어 지금 당장 나가 놀고 싶다는 표현으로 그려 보인다. 한정된 지면에 단색의 선으로 간소하게 그려 보이는 그림은 그 목적이나 동기가 선뜻 무어라 말할 수 없어 보였다.
그의 그림처럼 아직 자신의 욕망을 선뜻 보이지 않는 승동씨는 아직 정제되지 않은 자신의 내면을 보이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어딘가 바늘로 꾹 찌르면 마치 봇물 터지듯이 나올 것 같은 물렁물렁함을 그의 미소에 내 비취고 있는 것에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우리의 그림이 더는 진전되는 것에 실증을 느낀 나와 승동씨는 석원씨가 테이프 드로잉을 하고 모은 부산물 덩어리가 곧 축구공으로 변환되어 복도에서 놀고 있는 다른 참가자들과 합류되는 곳으로 눈길을 옯긴다. 승동씨는 갑자기 빠른 발놀림으로 다리 사이를 지나치는 다른 참여자들의 엉뚱한 발길질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예리하게 공을 예측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몰고다닌다. 그 좁은 복도 사이를 말이다. 나도 모르게 나도 축구에 합류한다. 오랜만에 공을 쫓아 연신 차대는 복도 축구에 빠져들었으니 승동씨도 역시 같은 마음으로 즐거웠을까?
우리가 지금까지 진행된 데이트 방식이 참여자 각자 자신이 일상적으로 해왔던 것들 혹은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여 진행하는 것이었다면 승동씨에게는 이런 패턴화된 일률적 생활을 보여주는 이야기보다 그가 새롭게 인식될 수 있는 것, 관심사를 다르게 해석해보는 다양한 과정들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다른 작가들에게 해본다.
그러면서 승동씨에게 다음번에는 어떤 새로운 환경에서 스스로 자신의 관심사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지 궁금증을 낳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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