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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2013-'총체적난 극'

'총체적난 극'2012년 12월 4일 이 아 람




2012124일 이 아 람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지만 느닷없이 찾아온 추위는 우리를 잔뜩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 하지만 곧 겨울에 적응이 될 것이 뻔한 우리는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를 감내하고 있는 사이, 겨울이 오는 시간을 이제 막 감지하고 있는 숙자 씨를 보게 된다. 겉으로는 다른 참가자들과 같이 두꺼운 코트로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몸은 아직 가을의 햇살을 잊지 못하는 것 같이 몸은 한껏 늘어져 있다.

아니, 그녀는 겨울이 오는 순간에 동면에 취하는 준비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처음 만났던 시간보다 더욱 지쳐 보이는 몸과 정신은 옆 사람마저 전이시킬 것 같은 불안한 시선을 보게 된다. 몇 주간의 숙자 씨의 이런 상태는 급격한 날씨 변화 탓으로 그녀가 날씨와 신체의 부적응에 대한 반응으로 읽힌다. 그래서인지 지난주 처음 숙자 씨와 요리를 진행하려고 준비해 왔었지만 숙자씨는 상자를 열지 못한 채 한쪽에서 짧은 겨울잠을 청하는 듯 쉬기만 하였다. 다음을 기약하며 만난 오늘도 급작스런 영하의 추위 때문에 총체적난 극의 참가자들을 위해 차량을 이용하여 경기도 미술관까지 이동하였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멀리서도 뚜렷한 눈 마주침은 전 주의 모임때 보다 활기를 느끼게 해주었다. 마음속으로 내심 불안했던 마음이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인사를 건네는 숙자 씨의 모습을 보면서 안심으로 돌아선다.

(뒤늦게 안 소식이었지만 그동안의 피곤함 때문에 밤에 잠을 청하지 못하는 숙자 씨가 수면제를 복용하면서 바이오리듬이 불균형해져 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오늘은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예술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하였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현혜씨 덕에 새로운 탁구대가 함께 함을 보일 수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간의 틈을 메우기 위해 해왔던 몸을 활용한 친화의 제스츄어들을 생략하고 참여자들과함께했던영상기록물을보며각자가무엇을진행하고있었는지확인해보는시간을가졌다. 여기에서도 병호씨는 특유의 몸동작으로 자신이 나오는 것에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이어진 숙자 씨의 댄스 영상에서는 당사자가 당황스럽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러운 시선이 무색하기라도 한 듯이 활짝 웃어 보이며 당시의 상황을 영상과 같이 연출하여 보인다. 다들 의외의 숙자 씨의 모습에 작가들은 즐거움을 금치 못하였으나, 다른 참여자들은 익숙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내가 그녀에게 너무 예의 바른 태도로 다가가고 있는 것에 오히려 답답하기라도 하듯이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는 그녀에게 머쓱해지는 시간이었다.

 



요리

다들 각자의 관심거리를 찾아 탁구대를 가지고 복도로, 조강이 작가는 주완 씨와 낱말 퀴즈로, 석원 씨는 테이프 드로잉으로 공간을 바쁘게 오가는 사이 나는 숙자 씨의 손을 잡고 그녀의 입술에 귀를 가까이 대어 오늘 준비해온 라면 재료들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남들보단 조금 느린 속도와 시선으로 재료를 살핀다. 숙자 씨가 좋아한다는 매운 라면과 냄비, 휴대용 가스레인지, 젓가락의 최소한의 재료들을 나열해본다. 그리고선 정수기 옆쪽에 자리를 잡아 라면을 끓일 때 제일 먼저 진행하는 것들에 대해 들어본다. 사실, 자신의 의견을 들어본다는 것은 문장으로서의 대화가 아닌 짧은 단어로 자신의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눈치로 잘 알아들어야 한다. 내심 눈치가 빠르지 못한 나로서는 심히 걱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숙자씨는 곧 이라고 한다. 물을 먼저 받아야 한다는 숙자 씨에게 정수기 쪽으로 몸을 돌리게 한 뒤 물을 받게 한다. 이제부터는 숙자 씨 스스로 물의 양과 라면을 끓일 때 재료를 넣는 순서 등의 모든 활동은 그녀의 몫이고 나는 가스버너에 불을 켜주는 것을 마무리로 그녀의 옆에 앉아 말동무가 되어준다.

하지만 내 얘기가 들리지 않는 것인지 애써 무시하는 듯이 오로지 라면에만 집중하는 그녀는 물이 끓을 때까지 소리 없이 빙긋이 웃는 모습을 몇 차례 보여준다. 석원씨와 같은 패턴으로 기억을 복귀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이어 물이 끓으려고 기포가 생기는 사이 라면 수프를 뜯어 한번에 털을 수 있도록 한쪽에 모으려고 가장자리 끝을 연신 움직이는 그녀가 수프를 자신의 코 가까이 대어 냄새를 맡은 뒤 또 한 번 빙그레 웃고 냄비에 부어본다. 다음엔 야채분말 수프를 넣고 마지막으로 라면을 넣는다. 라면이 잘 익을 수 있게 면발을 뒤적이는 모습에 그녀가 라면을 자주 먹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위아래로 뭉쳐있는 라면 면발이 풀어질 수 있도록 젖다가 면발이 익을 수 있도록 쉬지 않고 연신 저어 보인다.

간혹 센 불 때문에 손이 뜨거워 냅다 손을 빼어 보이는 숙자 씨는 불을 조절하여 보이기도 한다. 몇 분이 흘렀을까. 꽤 짧은 시간에 라면을 끓인 숙자 씨는 자신이 다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불을 끄고 맛을 보려고 한다.

그녀의 입가와 눈가엔 행복한 미소가 연신 흘러나오고 말없이 먹어 보인다. 내게 맛보라고 권하지 않자 나는 그녀에게 맛을 보겠다고 한 뒤 몇 가닥을 면을 집어 맛을 본다. 적당히 익은 면발은 씹기 좋았고 다소 짜게 먹는 본인에게는 살짝 싱거운 국물이었지만, 숙자 씨가 먹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얼큰함을 갖고 있었다.

옆에서 보던 정난 씨와 병호 씨가 냄새를 맡고 다가와 우물쭈물하는 사이 그들에게 건네진 젓가락질은 빠르고 민첩하게 그들의 입속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어 정난 씨가 언니는 요리를 잘한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어 그녀에게 내보이지만 역시 먹느라 여념이 없던 숙자 씨를 보고 난 뒤 그녀는 목이 막힐까 정수기에서 물을 담아 그녀의 한쪽 손에 쥐여준다.


젓가락으로 건지기엔 짧은 면발만을 남기고 라면을 비운 그녀는 이제 정리를 해 보인다. 쓰레기는 그녀의 손에 모이고 국물이 남은 냄비는 내 손에 쥐어진 채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입에 묻은 붉은색의 라면 국물은 휴지로 닦아내는 것 대신 물로 연신 닦아내면서 언제 라면을 먹었느냐는 듯이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우리에게 고픈 배를 달래주는 단순한 라면 끓이기는 그녀에게 요리 이상의 의미를 지녀 보였다. 라면 안에 들어있는 수프를 가까이 대어 코로 냄새 맡고 만지는 사이 그녀는 눈으로 요리를 대하는 것이 아닌 오감으로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고 있었던 오감을 통한 감각 익히기가 그녀에게 대수롭지 않은 듯 물 흘러가듯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오늘 그녀를 본 나는 처음 내가 심히 걱정했던 일련의 자기 책임 적 고민이 더는 필요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을 이용하여 그녀만의 것으로 요리를 대하고 있었음에 나는 진정한 예술과 삶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되는 시간이었음을 알게 한다. 또 한 번의 편견이 새삼 불편한 존중이었음을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요즘 들어 매회 함께 하는 이런 자리의 횟수가 거듭될수록 본인의 잣대를 통한 자기고민의 생성과 반성 혹은 치유의 연속이 되는 것을 보았을 때 도대체 총체적난 극은 누굴 위한 극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갈수록 나 자신을 위한 극이 되어간다는 것을 느끼면서 이 글쓰기가 제대로 되어지고 있는 것인지 자신이 없어진다.

그들 스스로의 방식으로 잘 살아가고 있고, 나름대로 사회성을 본인 각자의 시선과 속도로 풀어가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 지점이 나에게는 처음에 가졌던 걱정거리들이 다 부질없음으로 다가오고 오히려 나로 인한 프레임에 형성된 상상력을 그들에게 요구하는 듯이 보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점점 나 자신을 자책하게 되는 것이 무엇일까?

아니면 조금 진지해진 것일까? 단순한 호기심과 걱정거리에 묻혀 바라보았던 내 시선이 진지해지는 것을 보면서 다소 긴장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되는 것인가?

 

이후 그녀는 화장실에서 돌아오는 길에 탁구도 쳐보고 동열 작가의 노트북 앞에 앉아 연이어 나온 투애니원과 슈퍼 주니어의 흥행노래에 맞춰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면서 책상 아래 그녀의 발과 손짓은 연신 이리 갔다 저리 갔다를 반복하며 리듬을 타고 있는 모습에 다른 작가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된다. 오늘은 그녀가 좋아하는 두 가지의 모든 관심거리를 충분히 즐긴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곧 그녀는 체력이 다했는지 다시 늘어져 평상시 그녀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녀의 발끝과 손끝의 리듬은 그녀 스스로 그녀의 삶을 즐기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존재함을 증거 한다. 이 증거는 단순하게 그녀의 삶의 방식에 대한 존재증명일 수도 있지만 내게도 역시 내 삶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상호작용이 발생되는 지점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 같이 오늘의 시간을 마무리하기 전 다시 머리를 맞대어 다음 시간에는 좀 더 견고한 우리의 작업을 위해 라면에 추가할 채소들과 식기구들을 보완하여 다른 참가자들과 시식회를 해보기로 약속한다.

그때까지 그녀가 오늘의 기분으로 나를 맞이해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