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4일
총체적난 극 - 열하나
공연을 한 달 남짓 남겨둔 총체적난 극 만남의 풍경은 지극히 일상적이었다. 그 어떤 조바심도, 공연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도, 무언가 보완하고 만들어 나아가는 모습도 이곳엔 존재하지 않는다. 연출자와 퍼포머의 구분 없이 모두가 서로 짝을 이루어 지극히 안정된 상태에서 편안한 놀이들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공연을 앞둔 상황이라고 보기엔 지극히 평온한 분위기가 유지된다. 참가자들과 작가들의 구분이 가지 않는 분위기 속에 작가들은 풍경속으로 들어가 또 다른 풍경이 된다. 장애인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감각적 차원을 열고 스스로 운동할 수 있게 조용한 활로를 만들어 놓는 것이 현재 작가가 하고 있는 일이다. 활로는 공간이 되고 이 날 참석한 8명의 참가자들은 그 위에서 스스로 몸을 움직이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각과 한계를 너무나도 명쾌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 혹은 감각적인 한계들은 놀이를 통해서 이토록 매우 쉽게 드러난다. 놀이와 일상적 행위들을 통해서 그러한 한계를 명쾌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은 곧 장애를 드러내는 일이다. 그들이 가진 감각적 한계는 걸림돌이 아니라 여과 없이 드러내어 주장해야할 것들이다.
오늘은 두 명의 참가자가 불참하였다. 매 주마다 한두 명의 참가자들이 불참하는 일은 매우 일상적인 일이다. 복지관에서의 고단한 일정으로 인해 몸이 좋지 않거나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상황들에 대한 컨트롤이 되지 않아 약간의 문제가 생기거나 하는 일들은 빈번하게 발생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역시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스런 마음이 앞선다. 공연에서도 역시 모든 참가자들이 무대에 오르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일반론이 되어있다. 이것은 회의적인 태도라기보다 우리가 가지고 가야할 불일치함과 불확정성을 이해하고 드러내려 하는 고무적인 태도이다.
스피드 퀴즈를 즐기고 있는 조강이 배우와 주환씨
이제 만남의 자리에 와서 장애인들과 작가들이 함께하는 놀이에는 구체적인 맥락들이 잡혀있다. 몇 몇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고, 탁구를 치고 그림을 그린다. 김월식 작가는 몇 주 전부터 우리가 공연에서 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누차 이야기 해왔고 편안한 상태에서 개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거나 혹은 그 무엇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하였다. 이제 참가자들은 공연에서 이루어질 것들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게 될 것인지 알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매우 일상적인 차원에서의 놀이를 하거나 소수는 소파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 그들은 이 공간에서 편히 쉬거나 긴장된 몸을 이완시키거나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다. 작가들은 그러한 일상적 행위들을 장애인의 몸과,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공간을 통해 재전유 한다. 어찌보면 그 (특별한)무엇도 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그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조건들을 드러내게 하기 위해 작가들은 아주 먼 거리를 횡단하듯 밀도 높게 성찰해야만 했다.
이 날 새로 구비된 탁구대는 다양한 감각적 차원들을 드러내는데 부족함이 없는 스테이지로 기능하였다. 다른 그룹에 있는 친구들도 탁구대라는 무대는 매우 친숙한 공간으로 보인다. 거의 비장애인에 가까운 친구의 경우엔 얼마만큼 많이 주고받는지를 목표로 하여 탁구를 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화처럼 계속해서 이어나가려는 듯한 최소한의 핑-퐁에는 질문과 답변이 필요하지 않았다. 탁구의 디테일한 규칙들은 어느 정도 묵살하되 가장 근본적인 질서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반면 지적장애의 수준이 높은 친구에겐 이야기가 또 다르다. 테이블 위에서 이루어지는 언어적 형태의 운동과 기호들의 주고받음은 그들 앞에서 전복된다. 비장애인에 가까운 친구들 사이에서는 공을 주고받음이 근본적인 수행문 이었다면 이들에겐 그저 탁구채로 공을 치는 것만이 본질적인 수행문으로 작동한다. 떄문에 그들은 다른 친구들 보다 자신의 감각적 한계를 보다 앞당겨 드러낸다. 공을 치려고 하는 1차적인 목적성은 그 공을 받는 대상을 탁구대 위에서 지우기도 한다. 어디론가 보내야 한다는 대화적 장치 없이 그들은 대화한다. 불쑥 튀어나오거나 예상치 못한 방식의 사고적 탁구공을 맞이할 때면 실재와 마주한 것 같은 강한 인상을 일으키고, 그들이 가진 장애적 특질은 균질화된 공간에 균열을 만들고 탁구라는 언어 밖으로 내몰리게 한다.
얼마 남지 않은 공연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안정감 있는 시간을 만들어내고 있는 작가들 사이에 긴장감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10명의 장애인들 또한 만남의 자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놀이들을 접하며 편안한 리듬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공연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질 테지만 환경의 변화에 민감한 친구들이 스스로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더욱 잦은 만남과 다른 환경의 변화들을 먼저 체감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탄절과 연휴가 연달아 겹치는 바람에 참가자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더더욱 없어질 수도 있다는 파국적인 소식은 총체적난 극이 비로소 난국적 상황을 맞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된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은 탓은 아니다. 공연 전 까지 최대한 많이 보며 현재 만남의 성격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고 리듬을 유지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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