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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2013-'총체적난 극'

총체적난 극 세번째 씬

총체적난 극 세번째 씬 - 탁구, 유림 선혜 정란

#3 5M가 넘는 리프트위에서 빔 프로젝터가 푸른색 빛을 쏘아 댄다. 전시장 A 존의 벽면이 온통 몸으로 빛을 받아낸다. 사각의 푸른 프레임은 빛의 텐션을 보여준다. 그 텐션이야 말로 밀착으로 수렴되지만 결코 닿지 않는 무한한 부력의 텐션이다. 그 화면에 파란색 줄무늬의 탁구대가 밀려나오고 파란색 옷을 입은 여인들이 사각끼리의 콘트라스트를 흔들어 댄다. 한 없이 냉정하고 차갑게 흐를 것 같은 시간에 파란색 제동이 걸린다. 정란 선혜 유림은 탁구대를 모로 세워 펴놓고 네트를 건다. 네트가 sexy하게 걸리는 것은 역시 네트를 잡고 있는 네트 손잡이의 장력에 달려있다. 작은 손아귀에서 나오는 연약한 악력이 네트 손잡이의 장력을 이기지 못하고 부르르 떤다. 얼핏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무의미한 네트걸기가 객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가까스로 네트에 텐션이 만들어 졌지만 네트가 sexy하기에는 네트손잡이에 전유된 그녀들의 온기가 너무 많이 전달 되었다. 이 따듯한 텐션은 지속적으로 파란화면을 유린한다. 추운 겨울 주머니 안에서 손을 비비며 만들어내는 온기처럼 좀처럼 극에 냉정함과 차가움을 허락하지 않는다. 곧 그녀들은 곧 탁구대의 위치를 반듯하게 조정하는 듯 하더니 조명의 변방쪽으로 탁구대를 설치한다. 원래의 의도는 조명한가운데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탁구대의 모습이었는데 조명의 변방으로 밀린 탁구대가 의도하지 않았던 위태로움을 만든다.

탁구를 준비하고 있던 김월식 작가의 눈에서 짧은 시간 놀라움과 걱정, 결단과 포기, 인정과 받아들임의 연산이 흐른다. 정란이 나서고 첫 공이 탁구대 위를 튀어 오른다. ㅇㅇㅇㅇ ㅇㅇㅇ탁구 테이블 아래 설치된 마이크가 공이 부딪치는 순간을 중계한다. 사운드 증폭 장치를 통과한 소리가 어두운 하얀 벽면을 향하여 사정없이 쏟아진다. 벽면이 만들어 낸 에코가 핑퐁의 메아리를 만들어내는 순간을 기다리지 못하는 다음 공의 부딪힘이 레이어를 만들어 내며 다성의 합창이 되어버린다. 불협화음이라고 정의 할 수는 없다. 다협음이라고 해보자. 익숙한 핑퐁게임의 패턴으로 조직되어 있던 객의 반응 체계들로서는 기대할 수 없는 랜덤한 엇박의 연속이다. 치는 자와 받아내는 자는 이 사운드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연하게 공을 맞춘다. 정란이 나가고 유림이 들어온다. 쉐이크 핸드 라켓을 아주 느슨하게 잡고 탁구를 치는 그녀의 스윙은 타점의 방향을 몸 근처로 내 몰고 있다. 탁구라켓을 마치 파리채처럼 활용하는 그녀의 스트로크는 공의 움직임 또한 납작하게 만든다. 둔탁하고 걸걸한 엇박이 당연하다. 짧은 탁구 라켓의 손잡이를 파리채처럼 길게 활용하는

그녀의 스윙 폭이 늘어나는 것 또한 당연하다. 스윙의 거리와 느슨한 속도에 반응하는 김월식 작가의 스윙은 오히려 안절부절이다. 자기 타이밍을 놓치는 것은 김월식 작가 뿐 그녀들은 그녀들의 스윙에서 탁구 특유의 카타르시스를 만들어 낸다. 어쩌다 핑과 그렇게 퐁은 핑퐁의 소통구조를 해체하면서 새로운 소통의 차원과 통로를 만들어낸다


다시 선혜가 등장한다. 선혜는 비교적 자세를 낮춘다. 낮은 바운스는 탁구에 적합하다. 그래서 그런지 핑과 퐁의 합이 정박으로 바뀌어 간다. 탁구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정박의 통로가 열린다. 관람객이 수근 댄다. 비로소 안도의 탄성도 쏟아진다. 박수도 나오고 흥이 나기 시작한다. 이 반응은 무엇일까? 낯선 외국인의 입에서 어색하게 튀어나온 한국어를 접하는 기분일까? 드문 드문 열리는 이 통로는 어쩌면 관람객이 유일하게 열어놓은 상식의 통로이면서 불안을 보호하는 철망의 통로이다. 이 소통의 통로에서 마주한 안도의 관성이라는 것은 어쩌면 찌질함의 연대적 관성이다. 수적 우위의 위계라는 것이 대체로 이런식이다. 박수와 탄성 뒤로 숨어버리기에 적당한 품격있는 반응으로 핑과 퐁은 제도적 관성의 극을 연출한다

선혜는 계속 핑과 퐁의 리드미컬한 랠리를 만들어 내고 제인에게 자리를 내 준다. 제인은 극이 시작하기 불과 5분전 까지도 등장을 거부했다. 처음의 약속처럼 제인이 없는 자리를 메꾸어 주는 장치는 침묵과 웅성거림, 기다림이 될 것이었다. 총체적난 극은 사고를 편집할 권한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예측하기 어려운 사건의 개입 징후는 총체적난 극의 텐션과 밀도를 만들기도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제인이 등장한다. 탁구가 시작 된다. .... ....... 좀처럼 퐁이 없다. 퐁은 어디 갔을까? 요꼬의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처럼, 에펠탑에서 낙하하는 백남준 친구들의 머리카락 소리처럼 제인의 이두박근과 삼두박근이 반응하며 선회하는 팔 궤적은 조바심 가득한 공연장를 때린다. 튀어오르는 공이 제인의 시야에 들어오면 제인의 감각은 거칠 것 없이 넓은 신경체계의 하이웨이를 질주한다. 이 질주는 운전대를 잡지 않고 악세레터를 밟아도 무방할 정도로 넓은 사막과도 같은 하이웨이 위의 질주이다. 전방위로 열려 있는 도로를 질주하며 도착한 인지가 만들어 놓는 몸의 신호들은 전방위적 질주가 만들어 놓은 변주적 반응 체계를 만든다. 이미 수 많은 변주의 도로를 질주해 도착한 스트로크는 그렇게 조바심의 공을 때려댄다. 아마 탁구채를 쥐지 않았다면 제인이 만들고 있는 팔의 포물선은 자율 신경계의 반응적 스코어에 대한 연주가 된다. 제인이 이 연주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은 총체적난 극의 후반부 씬에서 증명된다. 그렇게 제인의 퐁이 핑을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