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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2012-Art is my Life

아방과후르드 Art is my life-1128

1128일 아방과후르드 Art is my life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은 학교가 단축 수업을 하는 날이다. 아방과후르드는 매 주 수요일 오후 340분에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학생들은 단축 수업 후의 빈 공백의 시간을 각자의 방식대로 사용하다 프로그램 시각에 맞추어 미술실로 모인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매 달 마지막 주 수요일은 참가자들의 수가 조금 줄어든다. 공부 때문에 늘 시간이 부족한 고등학생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발생되는 시간은 각별한 듯하다. 누구는 친구들과 놀러가고 누구는 모자란 공부를 하고 또 누구는 밀린 잠을 자기도 한다. 이 어떤 것도 방과 후에 모여 정체불명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 보다 달콤하다. 아방과후르드는 늘 이런 경쟁에서 지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매 달 마지막 주 수요일의 참가자가 줄어드는 상황이 현격하게 없어진다. 강요와 구속력 없이 스스로의 목적과 동기에 의해 채워지는 관계와 만남의 징후가 나타난다. 약속과 배려에 대한 가장 큰 조건은 신뢰다. 아방과후르드는 이 신뢰로 빈 공백들을 채우기 시작했다.

 

일주일은 칠일이고 하루는 이십사 시간이다. 아방과후르드는 일주일의 백육십팔 시간 가운데 두 시간 동안 진행된다. 나머지 백육십육 시간동안을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 속에서 중요한 기준을 설정하고 선택하여 시간을 활용한다. 입시가 중요한 고등학생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입시공부에 전념한다. 나머지 시간조차 입시를 위한 예비적 시간이다. 어찌 보면 개인을 위해 사용할 시간이 전혀 없어 보이는 고등학생들은 3년을 꼬박 입시에 매달리다 대학에 입학하고서야 비로소 자기를 되돌아 볼 시간을 갖는다. 그 만큼 지금 우리의 참여자들에게 입시 외의 잉여의 시간을 아방과후르드를 위해 사용해 보라고 권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이다. 이 다소 무리한 요구는 강제력은 없으나 심리적 무게를 동반한다. 우리는 지난 주 프로그램 말미에 이 심리적 무게를 동반한 앞으로의 미션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참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 되었지만 결과를 예측하거나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방과후르드는 방과 후의 정체불명 듣보잡의 프로그램이었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몸을 풀기도 전에 책상을 나란하게 붙여놓고 앉자본다. 빼곡하게 둘러앉자 자신들이 준비해 온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대단한 집중력과 진지함이 에너지를 만들고 있다. 도대체 이 아이들은 누구란 말인가? 진정 이 아이들이 지난 몇 달을 함께한 아방과후르드의 아이들이란 말인가? 누구도 진지함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진지하고 누구도 집중하기를 요구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여 가며 자신의 이야기와 그 차이에 대하여 진정성 있는 목소리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심 기대하지 않았지만 잠재되어 있던 타인에 대한 나의 강박을 확인한다. 아이들은 벌써 이만큼 성장하고 있었다. 무심한 듯 객관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작가들과 마음이 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때로는 불안함을 느끼는 작가들은 이미 관계를 저울질 하고 상처 받기를 방어하는 성인들의 관계체계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아이들은 장난도 치고 떠들기도 하고 주위를 산만하게 만들면서도 선 듯 마음을 주고 스스로 동화되어 차이를 구분하지 않고 존중한다. 이 탄력적인 관계 지향성은 청소년들이 갖고 있는 원초적 특성이지만 제도 교육에서 잘 발휘 될 수 없는 수면 아래의 본능이다. 입시는 경쟁을 낳고 경쟁은 그 태생적 특성처럼 위계를 만드는 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청소년기의 경쟁은 그 들이 갖고 있는 예쁘고 아름다운 관계지향성들을 마음속 깊은 곳으로 밀어 넣고 그 존재를 잊고 지내게 만든다. 자 다시 부활한 우리의 이 감각적인 관계성들을 이제부터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시영은 봉사활동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에 참석하지 못했다. 시작 전 잠시 학교 교정에서 시영을 만났을 때 시영은 친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해 놓았으며 오늘 참석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며 양해를 구했다. 시영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카메라를 좋아 했는데 그동안 구입한 카메라가 4-5종이 된다. 시영은 이 카메라를 구입한 시점을 사건으로 기억하며, 그 다른 시기의 다른 종류의 카메라로 찍었던 사진들을 통하여 자신을 이야기 하고 싶다는 드로잉을 남겨 두었다. 너무도 자세하고 꼼꼼하게 그려놓은 그림들과 text들은 시영이가 부재한 오늘 프로그램에서 시영이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 시켰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시영이의 자서전은 사진으로 채워진다.

 

준범은 역시 아버지와의 약속 때문에 프로그램에 참석하지 못한 체 학교를 빠져나가다가 교문에서 작가들과 만난다. 일주일 동안 고민했던 준범의 자서전은 너무나도 유쾌한 플립 북이다. 다음 시간 까지 대략의 스토리텔링을 끝내고 바로 그림을 그려나가겠다는 약속과 함께 총총거리며 교문을 뛰어 나간다.

 

혜민은 채의 형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과 글로 표현 하려 한다. 자서전 형식에 있어 어찌보면 평범할 수 도 있지만 그만큼 탄탄한 이야기와 그림솜씨가 필요한 이 작업에 작가들은 파이팅을 보낸다

 

가영은 큰 나무를 중심으로 어린 시절 엄마 뱃속에서 부터의 기억을 시작으로 연대기처럼 그림을 그려 나가려 한다. 재료에 대하여 고민 하는 단계지만 다음 시간부터 바로 작업을 진행 할 수 있도록 글쓰기에 집중하기로 한다.


 

하은은 건축을 좋아 하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건축에서 힌트를 얻어 집을 지어가는 가정으로 자신을 보여 주고 싶다는 계획이다. 어린 시절 부터의 사진을 자신이 만든 건축물에 꼴라쥬 방식으로 붙여 나가겠다는 구체적인 작업 방식이 설계되고 이제 작품 제작을 앞두고 있다.

 

또 다른 혜민(장혜민)은 어린시절 색종이로 접어서 만들어 놀던 동서남북 게임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보겠다는 심플한 구조의 계획정도에서 출발한다.

 

지우는 러시아인형에서 모티브를 얻어 계속 열면 작은 인형이 나오는 러시아 인형의 원형을 구입하여 그림을 그려나가는 방식으로 현재의 자신으로부터 과거 어린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가보는 컨셉의 작업을 구상했다. 깜찍한 발상이다.

 

해림은 투명한 아크릴 자르고 성형하여 그안에 작은 새싹들을 넣거나 위에 드로잉 하는 방식의 작업를 구상했다. 아마도 작은 새싹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는지 모르겠다.

 

채은은 모래그림을 그려보고 싶기도 하고 자신 주변의 사람들의 행복하게 웃는 모습들을 녹취한 후 편집하여 들려 주고 싶다고 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시각화하는 작업에 집중하는 반면 채은은 소리와 소리의 차이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또 자신을 표현하려는 입장이다. 어찌보면 세련된 동시대 예술의 사운드 아트 같은 작품이 나올지도.

 

수민은 프로그램의 맏언니처럼 냄새와 향을 이용하여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는 계획을 세웠다. 음식포장지나 불량식품도 활용해 보면서 어린시절의 향수를 추억해 내기도 하고 자신의 특정한 기억을 냄새로 번역하는 작업이 되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일련의 자신의 이야기들을 발표하고 나서 서로의 생각에 놀라며 그 다양함에 함께 즐거워 했다. 그리고 지금 이 계획이 실패하는 것에 대하여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과, 계획이 과정에서 뒤바뀌어도 상관없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 한다. 실패는 생각하게 하고 과정은 늘 고민하게 하는 것이니까. 수정과 보완을 반복하며 만들어지는 작업들은 어찌 보면 우리의 인생과 닮아 있다. 아이들을 지켜보는 이명은 선생님도 오늘 프로그램의 집중력에 놀라워하며 아이들의 작업에 격려를 보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