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 Art is my life 아방과후르드
11월 14일 아방과후르드는 조금 특별한 만남으로 시작되었다. 김월식 작가의 오랜 지기인 네팔리 상게 셀파 Sange Sherpa가 아방과후르드와 함께 해 주었다. 상게 셀파는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에서 오랬동안 전문 트래킹 가이드로 살아왔고 더불어 네팔 오지의 마을에서 청년조직을 일구어 마을을 살피는 ngo활동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청년이다. 학생들은 이 멀고 낯선 이국의 땅을 방문한 상게 셀파를 진심으로 환영해 주었고 상게 셀파는 환영에 걸맞은 네팔이야기로 화답을 시작했다. 이야기가 시작 된 지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학생들은, 작가들은, 상게 셀파까지도 모두가 이 다른 나라의 차이에 대하여 집중하고 빠져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새로운 감흥이다. 차이가 만나서 서로에게 집중하며 빠져드는 이 느낌은 흡사 연애의 감정과 비슷한 것일 수도 있다. 다른 문화가 만나서 연애가 시작되는 그 시점이랄까? 하여간 이 생소한 감정의 유발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이고 이 사건이 우리들의 삶을 어떻게 성찰시킬까? 새삼 기분 좋은 징후의 발견이다.
상게 셀파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자락인 에베레스트의 골리라는 마을에서 나고 자란 셀파Sherpa민족이다. 셀파 민족은 본래 티베트에 살면서 중국과 네팔 인도까지 히말라야을 넘어서 교역을 하던 민족이었고 때문에 티베트와 히말라야의 산중에 촌락을 이루고 살고 있다.
그런 배경의 민족이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산에 적응력이 높고 산에 대한 이해가 높기 때문에 히말라야 전문 가이드나 포터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흔하게 우리가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산악 다큐멘터리를 보면 등반가 옆에서 묵묵하게 길을 먼저 내어 주거나 짐을 운반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셀파 민족이고 때문에 포터(짐꾼)라는 직업이 타국의 사람들에게 셀파라는 대명사로 오인되는 부분이 많다. 상게 역시 해발 4000M가 넘는 에베레스트의 마을에서 태어나서 자랐기 때문에 히말라야 전문 트레킹 가이드로 활동하고 있고 트레킹 가이드는 상게에게 있어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경제 행위이자 그가 제일 잘 할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상게가 사는 에베레스트의 골리 마을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로컬 버스를 타고 10시간을 달려 더 이상 차가 다닐 수 없는 지리라는 마을에서 하차하여 다시 3일을 꼬박 걸어야만 도착 할 수 있는 마을이다. 이 골리 마을에서 에베레스트의 관문인 남체 바자르까지는 걸어서 5일 정도의 거리가 있다. 유명한 트레킹 명소는 아니지만 셀파민족들만 촌락을 이루고 사는 골리라는 마을은 외국인들의 방문이 거의 없는 아주 작고 조용한 히말라야의 오지 마을이고 아직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이 마을의 셀파 민족들은 자연의 시간에 생활을 맞추어 살아가고 있다. 해가 떠 오르는 시간에 일어나서 일을 시작하고 해가 지는 시간에 맞추어 잠을 자는 골리마을 사람들은 자연의 시간에 순응하는 삶처럼 자연을 닮은 순수함들이 있다.
친절하고 상냥하며 부끄러움을 많이 타지만 산악의 강인함과 진정성이 대대로 이어 내려오고 있으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책임감이 투철하다. 골리마을에는 전기도 없지만 의료시설이 전무하고 학교 시설 또한 매우 열악하여 교육환경이 좋지 못하다. 학교 교실에 변변한 책상도 없고 선생님들도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은 교육을 위해 골리 마을을 떠나고 있고 이런 현상은 교육을 위해 자식들을 서울로 유학 보냈던 우리의 근대적 풍경과 많이 닮아 있다. 이런 골리 마을의 상황을 늘 안타깝게 생각했던 상게 셀파와 마을의 청년들은 트레킹 가이드 활동 중 인연이 된 한국의 ngo와 뜻있는 독지가들의 도움을 받아 골리 마을에 도서관과 헬스 포스트를 지원하는 사업에 참여하게 된다. 모두의 노력으로 골리 마을에 도서관과 마을 약국이 세워지고 골리 마을에는 인근 마을에서 까지 약을 지으러 사람들이 오가는 건강 거점 마을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상게 셀파와 마을 청년들의 마을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처음부터 잘 조직 되었던 것은 아니다.
네팔은 오랜 왕정의 독재 때문에 발생되는 사회적 문제가 심각한 나라이다. 또 왕정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세력 또한 중국 공산당의 지원은 받고있는 마오이스트(마오쩌뚱의 사상을 숭배하는)들이기 때문에 네팔 여기 저기서 이 두 세력간의 빈번한 충돌이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왕정의 손길이 닿지 않는 히말라야의 오지 일수록 중국쪽의 지원을 받은 사회주의 연합 정치 세력들이 마을을 장악하고 있고 상게 셀파의 골리 마을도 오랜시간 마오이스트들이 마을을 점령하고 주민들의 재산을 환수하고 마을의 청년들을 전쟁의 방패막이로 사용해 실재 상게 셀파의 친구들도 전쟁에서 많이 사망하는 사건들이 발생했다. 마을은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고 상게 셀파는 목숨을 걸고 마오이스트들과 싸움을 벌인 후 가까스로 마을을 탈출해서 카트만두에서의 삶을 살게 된다. 전쟁이 휴전되고 마을이 평상의 느낌으로 돌아오기 까지 오랜 시간 상게 셀파는 골리 마을로 돌아 갈 수 없었고 그 시기에 상게 셀파는 카트만두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가이드와 ngo일로 생활을 이어갔다.
그렇게 7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에야 상게는 다시 마을로 돌아 갈 수 있었고 전쟁의 상흔이 지나간 마을은 전쟁이전보다 황폐했고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서 죽거나 가족들이 다쳐서 그 상실감이 마을을 뒤 덮고 있었다. 어찌보면 우리의 6.25 전쟁 같은 동족상잔의 상처들을 네팔사람들도 똑같이 갖고 있는 것 같고 이런 일종의 공감대가 상게 셀파와 한국 사람들을 서로 잘 이해하며 연결시켜주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상게는 황폐해진 마을에서 다시 청년 조직을 만들고 우선 어린이들의 교육에 관심을 갖는다. 또 청년들이 마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이를 건강하게 수행해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과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골리마을은 차차 안정을 찾아갔고 도서관을 세워 아이들이 맘 놓고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간단한 약 처방정도는 할 수 있는 마을 약국까지 지원 받을 수 있었다. 상게 셀파는 자신의 미래와 꿈에 대하여 말한다. 가이드 일을 하면서도 지속적으로 블론티어 조직을 이끌고 자신의 마을이 받은 도움을 또 다른 지역에 나눌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삶을 살겠다고.
상게 셀파의 네팔이야기와 삶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단순하게 책이나 인터넷 기사 혹은 다큐멘타리 필름으로 알아왔던 네팔의 이야기 보다 훨씬 피부에 농도 짙게 전해졌다. 다소 힘들고 어려운 기억들을 더듬거리지만 또박또박한 한국말로 진정성 있게 이야기 하는 상게 셀파의 이야기에 모두에게 진정성 있는 감정을 선사했다. 상게의 이야기가 끝나고 문화의 차이와 시대적 동질감에 대한 서로의 생각, 또한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이야기에 대하여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말을 아꼈지만 구성원 모두 동시에 느끼는 이 감정은 아방과후르드에 처음으로 태동되는 기분좋은 징후임에 분명했다.
상게 셀파! 데레이 더녜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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