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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2012-Art is my Life

9월 19일 심심한 아방과후르드

 

919일  심심한 아방과후르드

방과 후 수업은 정규교과 수업이 끝난 후의 자율적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수업이다. 새벽부터 등교하여 하루 종일 수업과 씨름하며 지친 아이들에게 방과 후 수업의 목적성이 당장 코 앞의 입시에 관련된 수업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는 한 방과 후 수업은 늘 잉여의 시간이며 잉여의 태생적 특성상 구속력을 갖기가 힘들다. 919일의 아방과후르드는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한 전 주에 비하여 현저하게 낮은 출석률을 보인다. 그나마 참석한 6명의 학생들도 전 주에 비하여 썰렁한 교실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표정이다. 4명의 작가와 미술선생님, 프로그램을 지원한 재단 측의 실무자 6명과 학생 6명이 나란하게 앉아서 멀뚱하게 서로의 얼굴만 바라본다.

미술 선생님은 오늘 학교의 많은 학생들이 직업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어서 상대적으로 학교에 남아 있는 학생의 수가 적다는 말씀을 전해 주신다. 그 나마 오늘 아방과후르드에 참석한 학생들은 자율적 소신을 가지고 모인 학생들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요즘 학교들은 학교 자체적으로 좋은 프로그램들을 많이 기획하고 수행한다. 덕분에 방과 후에 시간이 편성된 아방과후르드에는 이름만큼이나 아방가르드한 전략이 필요하다. 입시와 학교일정, 학원 스케줄, 쉬고 싶은 마음, 놀고 싶은 마음과 견주어 이겨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과연 될 수 있을까? 예측하지 않았던 경쟁심이 발동하는 순간이다. 사실은 예술가 스스로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표출되는 것이기도 하다. 자 이 강박을 어떻게 유연하게 풀어 나갈 것인가?

 테이블 하나에 옹기 종이 빼곡하게 둘러앉아서 의미 없는 수다를 시작한다. 신변잡기에 관한 이야기 TV속 드라마 주인공 이야기, 개그 콘서트의 웃긴 이야기 등을 주고받는다. 이런 잡담에는 주제가 없다. 그냥 꼬리에 꼬리를 무는 농담들의 연속이다. 사실 진지해 지는 것이 무서운 것 일수도 있다. 정말 금 같은 시간을 농담으로 채워나가는 것에 대한 죄책감들을 애써 무시하기 위해 농담의 위력을 활용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간이 지나면서 침묵의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점 점 벌어지는 침묵의 간격들은 이 어색한 분위기를 금세 장악한다. 이제 갓 두 번째 만난 사이의 침묵을 채워줄 재간이란 것이 별로 없다. 김월식 작가는 다시 아방과후르드를 이야기한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의제를 던져 놓고 답을 기다린다. 아이들은 답이 없다. 다른 작가들과 선생님도 침묵한다. “미술 수업 일까?” “그러면 무엇이 미술일까?” 아이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미술에 대하여 조금씩 이야기를 한다. “그림 그리는 거요” “이쁘게 만드는 거요다시 김월식 작가가 말을 한다 , 우리는 그림 그리고 만드는 것은 하지 않을 텐데아이들은 다시 침묵한다.

 김월식 작가는 작가의 어린 시절에 대하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그리고는 작가가 된 지금의 이야기도 덧 붙여서 이야기 한다. 공부를 지독하게 못했던 고등학교 시절, 그림을 그리다가 포기한 사연, 작가가 되었지만 어떤 결과물도 만들지 않는 예술을 하는 이유 등. 아이들은 김월식 작가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리고는 역으로 자신의 이야기들을 조금씩 꺼내 놓으면서 질문을 한다. “그러면 이것도 예술이고 저것도 예술인가요?” “아니 그게 왜 예술이지요?”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의 웃음이 터져 나온다.

아직 아이들에게 또 아방과후르드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이 듣보잡의 프로그램을 규정할 수 있는 힌트가 없다. 친해질 만큼의 시간도 없었다. 수업의 구속력도 없다. 하지만 중요한 한 가지는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 속에서 타인과 나의 차이를 계속해서 발견해 내는 것이다. 이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발견되는 차이들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할까? 우리는 귀한 두 번째의 시간을 이렇게 흘려보냈다. 아이들도 작가들도 쓸데없고 쓸모없는 오늘의 두 시간이 앞으로 어떻게 연동될지 짐작할 수 없다.

 정말 아이러니 한 마지막 한마디는 오늘 수업이 재미있었다는 몇 학생의 이야기.